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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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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동아인문학회 동아인문학 東亞人文學 第37輯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1 - 33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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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처용과 처용설화가 문인들의 시문학에 수용된 양상을 고찰한 글이다. ≪삼국유사≫에 소개된 처용과 설화는 후대로 전승되어 고려후기 이제현 ‘소악부’에 <처용>으로 의역되어 재창작되었고, 이숭인의 시에는 우국에 대한 심경이 태평성대를 구가하며 불렸던 신라 <처용가>에 대비하여 표현된 것으로 보았다. 아울러 예전의 악보인 ‘구보(舊譜)’대로 전해온 노래를 들었다는 시어로 인하여 새 노래 ‘신보(新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였다. 이후 이색의 시들은 국가행사・군신연・나례의식 등의 행사에 묘사되어 나타났다. 고려시대 문인들의 작품에 처용이 등장하기까지 사료를 통하여 그 추이를 부연해 보았다.
조선시대에는 처용과 설화가 영사악부 문인들에 의해 수용되었다. 영사악부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소재로 ‘제목-사화-작품(인식)’라는 구성을 통하여 포폄(褒貶)을 가하는 특징이 있는데 그들의 작품에도 인식, 곧 사평이 투영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처용과 설화가 수용된 양상은 세 가지로 나타나는데, 먼저 처용의 부정과 신라 위정자 비판, 다음은 처용은 긍정하되 신라 위정자의 비판, 그리고 처용의 예찬 등이다. 첫 번째는 처용무를 궁중에 만연하게 하여 어지럽게 만든 처용이 부정되고, 이에 빠져 탐락을 일삼았던 위정자들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처용에게 벼슬을 내릴만한 자격이 있었는지 의문을 제시하고 또 벼슬을 내린 위정자의 인사등용에 대한 부정의식을 드러낸 작가도 있었고 처용만을 부정하고 정치현실에 대해서는 표현하지 않은 작품도 있었다. 두 번째는 임금의 성덕을 축원하고 또 경계를 일러주었던 처용은 긍정되되 신라의 정치상황과 현실은 풍자 또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신라의 정치상황이 자신들의 현실상황에 비유되거나 한탄이 표현되기도 하였다. 세 번째는 처용이 태평성대에 구가(謳歌)되었기에 전승되어야한다는 인물로 예찬되거나 우리 음악의 전승에 의미를 두기도 하였다.
처용과 설화를 수용한 작품들을 발췌하여 본고에서 새롭게 영사악부로 인정하여 살펴보았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고려시대 시문학에 수용된 양상
Ⅲ. 조선시대 시문학에 수용된 양상
Ⅳ. 결론
【參考文獻】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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