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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구난희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58輯
발행연도
2017.7
수록면
125 - 15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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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渤海 東京이 위치했던 琿春 일대의 역사적 연원을 다룸으로써 동경 지역의 역사적 위상과 현재적 의미를 검토하였다. 沃沮와 高句麗 柵城은 서북방 진출의 교두보로서 그리고 중원왕조와의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방어적 보루거점으로서 역할을 담당하였다. 발해 시기에 접어들면서 선대의 기반 위에 동경 지역은 연해주로 향하는 연계망을 확장시키고 광대한 영역을 확보하는 전초기지로 그 역할을 전환하였다.
遼代의 동경 지역에 대해서는 蒲盧毛朵部를 통하여 渤海 遺民의 殘存 地域으로서의 의미에 주목함과 동시에 발해 부흥 운동 세력의 背後地로서 역할하였음을 새롭게 밝혀 보았다. 한편 遼朝는 蒲魯毛朵部에 대해 압박과 회유의 양면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渤海 東京’의 역사성을 퇴색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후 연해주 지역을 중심으로 여진화가 촉진되면서 금은 合喇路(葛喇路), 恤品路, 耶喇路 등을 설치하였고 원대에는 奚關總管府로 이어졌다. 하지만 해관총관부가 소속된 開元路의 명칭이 東京龍原府를 편입한 요의 開州 및 그 산하의 開原縣에 연원을 두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책성-발해 동경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상징성을 계승한 것이라고 제안해 보았다.
明代에서는 기존 중국학계에서 고려하지 않는 建州衛와의 관련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보았다. 비록 建州衛의 중심지역은 綏芬河 일대이지만 建州라는 명칭의 연원을 발해로부터 찾을 수 있으며 건주여진이 목단강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으로 보아 비록 실체적 명분은 상실하였지만 역사적 연원으로서의 상징성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근대 이래 중국과 러시아의 분계로 연해주와 직접 연계는 제동이 걸렸지만 이제 이러한 구분을 넘어선 동북방 교류의 새로운 변화가 혼춘지역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훈춘 일대에 다시금 발해 동경의 위상을 재현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는 말
2. 韓國史 舞臺로서의 출발
3. 高句麗의 東北方 進出 背後地
4. 渤海의 沿海州 및 東海 進出 據點
5. 渤海 東京의 脫色과 渤海遺民의 歸鄕地
6. 渤海 東京의 忘却과 沿海州의 附屬地化
7. 맺는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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