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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용철 (국가보훈처)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61집
발행연도
2018.2
수록면
43 - 83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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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평안북도 의주지역의 3·1운동을 살펴본 것이다. 필자가 의주지역의 사례를 살펴본 이유는 의주가 평안북도에서 가장 많은 시위가 발생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단일주제로 한 연구가 없었고, 의주지역 3·1운동과 관련하여 가장 기본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는 일제시대 수형자료 등도 활용된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역적 특색에 비춰 보았을 때, 의주지역 3·1운동은 식민지배체제 강화에 따른 피해(新義州 설치에 따른 의주지역 소외, 토지조사사업, 105인 사건), 조선시대 이래 확산되어 오던 기독교와 천도교, 서북학회로 대변되는 애국계몽운동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중 특히 기독교와 천도교의 경우는 의주지역 3·1운동의 계획과 발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유여대 등의 활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의주지역의 3·1운동은 3월 1일 발생하여 4월 4일까지 지속되었다. 총 44회의 시위가 확인되며, 주기로 보았을 때는 3·1운동의 전국적 추세에 부합하여 3월 하순에서 4월 초순 사이에 가장 많은 시위가 발생하였다. 총 44회의 시위 중 24회가 이 시기에 집중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判決文」·「身分帳指紋原紙」 등 일제의 수형자료를 근거로 참여자를 분석해보면, 확인되는 참여자 중 연령별로는 20~30대가 60명(76.9%)을 차지하여 운동의 주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많이 확인되는 직업은 농업으로 45명(56.9%)이었고, 다음으로는 상업이 14명(17.7%), 기독교계열(목사·조사·신도)이 8명(10.1%)의 참여자를 배출하고 있었다. 죄명을 보면 ‘보안법위반’이 가장 많은데 단일 죄명으로 한정해도 47명(59.4%)이고, 다른 죄명과 같이 부여된 사례까지 합치면 총 63명(79.7%)까지 늘어난다. 刑名·刑期를 보면 징역형이 55명(72.3%)으로 다수를 차지한 가운데 가장 높은 형은 10년형으로 8명이었으며, 가장 많은 이들은 받은 형기는 1년형으로 14명(18.4%)이었다. 이외 태는 총 19명(25%)이 받았는데, 한 명만 40度를 받았고 나머지는 모두 90度를 받고 있었다.
의주지역은 서울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먼저 3·1운동이 시작된 곳으로, 평안북도에서 가장 많은 시위가 일어났으며, 전국적 추세에 부합하여 시위가 전개되었다. 기독교도와 천도교도의 활약이 두드러진 곳이었으며, 대한제국기 계몽운동 역시 운동의 기반이 되고 있었다. 한편 시위 참여자들은 시위과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매개로 시위를 전파·전개했으며, 파리강화회의와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받은 이들도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와 함께 시위가 읍내에서 시작되어 점차 외곽으로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었고, 초기 종교인·학생에 의해 주도되었던 시위가 점차 농민·상인으로 대변되는 일반적인 군중의 주도 하에 전개되었다는 사실 역시 파악할 수 있었다.

목차

1. 머리말
2. 의주지역 3·1운동의 배경
3. 의주지역 3·1운동의 전개와 참여자
4. 의주지역 3·1운동의 성격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참고문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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