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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은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39집
발행연도
2018.4
수록면
86 - 120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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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선교장은 효령대군 11대손인 李乃蕃(1703~1781)이 1748년 터를 잡은 이래 명실상부한 장원의 규모로 성장하였다. 이후 선교장은 금강산과 설악산, 영랑호, 경포대 등 관동팔경을 유람하는 전국의 명류들이 모이는 문화공간이 되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선교장의 열화당과 활래정은 이곳을 거쳐 간 많은 묵객들과 서화가들의 자취가 다수 남아 있다. 그중 주목되는 것은 『강원도지』에 근대 관동지역 서화의 대가로 알려진 此江 朴基正(1874~1949)의 작품이다.
박기정은 彛齋 權敦仁(1793~1859)의 문인으로부터 수학한 후 위정척사의 영수였던 유인석 휘하에서 의병활동에 가담하여 일본에 저항하였다. 그는 원주와 강릉을 배경으로 많은 서화 작품을 남겼으나 그의 화명은 화단에서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조명되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일제 주도의 서화협회 등록을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활동하였기 때문이다. 박기정은 일제강점기 선교장 주인이던 이근우와 그의 아들 이돈의의 적극적 후원으로 선교장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이 글은 강릉 선교장에 소장된 차강 박기정의 《活亭十景百衲圖屛》을 중심으로 그 창작 배경이 된 활래정의 문화사적 의의와 작품 내의 제시 및 화풍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박기정의 《활정십경백납도병》은 1946년 활래정 수석지관에서 제작되어 선교장 주인 이돈의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이러한 百衲屛風은 方形, 圓窓, 扇面 등 다양한 화면에 각각의 주제를 모아 하나의 병풍에 담은 것으로 19세기에 새로 등장한 회화형식이다. 백납도병은 당시 物譜 성격의 청완품에 대한 수집과 완상, 이미지 편집과 재배열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할 수 있다. 《활정십경백납도병》은 편화를 별도로 부착하지 않고 병풍 면에 직접 여러 화면을 구획한 후 그림을 그려 넣은 형태이다.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화면에 그린 여러 종류의 화목과 화제를 적은 서예 작품에 이르기까지 박기정의 서화 세계를 종합적으로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백납도병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화목인 산수는 박기정의 현존 작품에서는 드물게 나타나 더욱 의미가 있다. 대개 강안의 어촌 풍경을 묘사하였는데, 이는 경포를 생활 무대로 한 선교장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작품이 모두 실경을 그린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박기정은 남송대 강남지역 화가들이 망국의 쇠잔한 정취를 산수화에 이입하는 ‘殘山剩水’의 구도를 빌려 화폭에 옮겨 놓은 것이다. 이는 그의 작품 활동 시기가 일제강점기와 점철되어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밖에 박기정의 작품 중 묵매는 『완당화보』를, 석란은 『석파화보』를 임모한 작품이 전하여 이들 화풍과의 관련성을 짐작할 수 있다.
박기정의 서화 세계는 사심이 없는 경지에서 붓을 잡아야 한다는 ‘用筆在心, 心正則筆正’과 초월의 자유를 추구하는 ‘秋水精神’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는 청강 장일순, 화강 박영기에게 전수되어 현대화단까지 그의 화맥이 계승되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선교장 활래정과 박기정의 서화 활동
Ⅲ. 《활정십경백납도병》의 제시와 화풍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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