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서은미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07집
발행연도
2018.6
수록면
39 - 87 (49page)
DOI
10.52271/PKHS.2018.06.107.39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고려의 차 소비는 왕실과 사찰, 그리고 문인이 그 중심에 있었던 귀족문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귀족적인 특정 집단의 소비단계를 넘어 보편적인 소비단계로 발전하지 못했던 것은 근본적으로 국내 차 생산을 확립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고려는 국초부터 차를 외부로부터 반입하는 환경이었고, 반입된 중국차는 지속적으로 선호된 상품이었다. 국내 차 생산 발전은 초기부터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여건으로 고려에서 차 문화는 왕실과 사찰, 문인을 중심으로 한 상층문화로서는 상당히 발전할 수 있었지만 생산과 공급의 안정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보편적인 소비의 보급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게다가 중국차의 유통도 宋商이 주도하고 있었다. 고려 상인의 활동을 통한 상업 발달의 기회를 이용할 여건도 조성되지 않았다.
다점과 주점은 고려에서 화폐의 사용을 권장했던 대표적인 시설이었다. 고려는 화폐의 사용과 상업의 발달을 장려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했지만 그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현물교환이 일반적이었던 서민에게 다점은 익숙한 장소가 아니었다.
차의 생산이 왕실의 징세와 사찰경제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한계는 여전하였지만 왕조가 안정기로 접어들면서 경제의 발달에 따라 차의 소비가 증대되었다. 도시를 중심으로 한 상층문화가 발달하면서 차의 소비도 많아졌다. 결국 고려의 차 소비와 문화는 신분적으로 지역적으로 제한적이었다. 또한 차는 하사와 여러 의식의 의례를 통해 통치력과 위계질서를 확립하고 권위를 형성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국제 의례에서도 차는 의례와 예물의 목록으로 외교 관계에서의 상징적 역할을 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려의 차 생산과 문화
Ⅲ. 고려의 차 의례와 국제관계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8-911-003161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