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저널정보
국립민속박물관 민속학연구 민속학연구 제42호
발행연도
2018.6
수록면
179 - 214 (3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항일독립운동의 기지였던 북간도의 항일독립운동사 연구는 많았다. 그러나 북간도 한인들의 생활문화사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이는 역사학의 사건 중심 연구의 결과이다. 북간도 한인들은 이상향을 건설하고자 두만강을 건넜고, 타국에서 사람답게 살고자 자치조직을 만들었다. 나라 잃은 설움을 극복하고자 그들 스스로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활문화는 독립운동의 튼튼한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이 논문은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한 배경인 북간도 한인들의 장례문화를 중심으로 그들의 생활문화를 밝히는 것이 목적이었다. 시기는 1900~1945년이다. 여러 상황으로 개인의 생활사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다행히 남아 있는 사진이 있어 사진에서 정보를 읽는 사진민속학(사진역사학)의 방법론으로 북간도의 장례문화를 읽을 수 있었다.
1910년대~20년대가 되면 명동촌 지도자들은 모두 장로가 되고, 2세대도 목사가 될 정도로 북간도 명동촌은 빠르게 기독교 공동체로 전환된다. 이주 초기 지배적이었던 유교식 장례문화 역시 기독교식으로 변화된다. 그러나 다양한 부분에서 기독교와 전통 유교식 장례문화가 습합되어 있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의는 명주로 만들고 생시에 미리 준비하는 전통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었다. 삼베로 만드는 상복은 기독교식으로 바뀐 장례문화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아이들은 평상복에 고깔모자를 쓰도록 한 것이 특이하다. 그러나 상장(喪杖)은 완전히 사라졌다. 특히 미혼의 어린나이에 어른들보다 먼저 죽은 자의 상례는 조촐하고, 상복도 제대로 갖추지 않는 전통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었다. 장례식 때 남자는 동쪽, 여자는 서쪽에 서는 전통은 여전히 전승되고 있었다. 전통과는 달리 여성이 장지에 따라가는 새로운 문화도 등장하였다. 고인의 영혼은 상징하는 혼백은 사진으로 만든 영정으로 바뀌었고, 액자의 검은색 리본, 완장, 상장 등은 「의례준칙」의 영향이나 일본식 장례문화의 유입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간도의 장례문화는 외형상 완전히 기독교식으로 변화되었지만, 전통적인 장례문화요소와 습합되어 전승되고 있었다. 이는 기독교식 장례문화와 전통 유교식 장례문화가 습합된 새로운 문화이다. 이것이 북간도에 이상향을 건설한 한인들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여기는 전통이라 할 수 있다.

목차

1. 머리말
2. 북간도 생활문화의 변화
3. 사진과 회고록으로 보는 북간도의 장례문화
4. 북간도 장례문화의 변화-전통 유교식 의례와 기독교식 의례의 습합
5. 맺는 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49)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8-380-003104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