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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열암곡사지 석조불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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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ne Buddha Statue at Yeolamgok Temple Site, Namsan of Gyeongju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희진 (울산박물관)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99號 KCI Excellent Accredited Journal SCOPUS
발행연도
2018.9
수록면
163 - 198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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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열암곡사지 석조불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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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열암곡사지는 고위산 남서쪽 백운계 본류의 오른쪽 열암곡에 위치한 절터이다. 현재의 열암곡사지는 보수된 모습이지만 그 전에는 건물의 초석들과 넘어지고 깨진 불상의 부재들이 주변에 흩어져 있었는데, 2007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주변을 발굴조사하고 석조여래좌상과 절터를 보수·정비하였다. 그 과정에서 현재 보수ㆍ정비된 석조여래좌상과 30m 정도 거리에서 5m가 넘는 대형 마애여래입상이 넘어진 채 발견되면서 크게 주목받은 바 있다.
본 연구에서는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열암곡사지의 두 여래상에 대한 제작시기를 다시 검토하고 이를 통해 가람의 형성시기에 대해 살펴본 후 남산 불적을 통한 조각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다루어 보았다.
열암곡사지 석조여래좌상을 8세기 후반 작품들과 9세기 전반 작품들의 모습과 광배를 비교한 결과, 8세기 후반 상들에 비해 둥글어진 얼굴에 신체 비례가 다소 짧아졌고 어깨와 가슴이 좀 더 당당한 모습에서 9세기 작품들과의 친연성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9세기 작품들과의 비교 결과 신체균형, 옷주름의 표현이든지 광배의 화염문 등의 표현이 좀 더 세밀하고 세련된 것으로 볼 때, 열암곡사지 석조여래좌상의 제작시기는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보다 앞선 9세기 전반 작으로 추정해 볼 수 있었다.
열암곡사지 마애여래입상은 801년 작인 경남 함안 마애약사여래삼존상 중 본존상의 봉긋이 솟아있는 육계와 사각에 가까운 얼굴, 단판 연꽃잎으로 이루어진 올림연꽃 대좌와 발의 표현 등에서 친연성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9세기 전반기 작인 경주 남산 삼릉계 선각육존불 중 서면 본존입상 얼굴, 대의 착의법과 옷주름 등과 비교하였을 때 9세기 전반기 상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마애여래입상의 독특한 수인과 대의 옷주름 표현 등의 특징으로 볼 때 왕정골 석불입상 유형에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불상으로는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경주 남산 왕정골 석불입상,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석불입상, 전웅수사지출토 석불입상, 경주 황룡골 출토 석불입상, 경주 남산 삼릉계 선각육존불 중 서면 본존입상, 경주 남산 약수계 석불입상, 경북 상주 증촌리 석불입상 등의 사례가 있다. 이 중 손모양이 다른 경주 남산 삼릉계 선각육존불 중 서면 본존입상을 제외한 작품들의 경우 엄지와 검지 또는 중지와 결한 모습이라든지 방향성으로 볼 때 아미타여래의 수인인 구품인의 또 다른 유형의 수인을 가진 불상으로 추정하였다.
열암곡사지가 있는 곳은 경주 남산 남동쪽 끝단의 백운계로 이 지역에는 열암곡사지 외에도 양조암곡사지, 심수곡사지, 백운곡사 등 9세기 대의 절터들이 건립된 곳이기도 하다. 백운계 불상들은 열암곡사지 불상들이 만들어진 다음 가람과 불상들이 만들어져 배치되었던 것으로 남산 불적 가운데 9세기 대 유적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된 중요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경주 남산에서의 8세기 대까지의 불사 중심은 완만한 구릉이 형성된 북ㆍ동쪽 중심으로 이루어 졌는데 9세기 대에 들어서면서 급경사로 이루어진 백운계를 비롯한 남ㆍ서쪽에서도 불사가 활발히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은 경주 남산의 지형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당시 정치ㆍ사회적 배경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신라 하대는 왕위찬탈과 왕권 불안정으로 인해 왕위계승의 정당성 확보가 필요하였을 것이고, 왕권강화나 체재 유지를 위해서는 신라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불교와의 관계된 불사가 필요했을 것이다. 애장왕 2년 806년 새로운 사찰 건립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왕경 보다는 지방, 경주 왕경 보다는 남산을 중심으로 불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유추할 수 있었다. 9세기 대 경주 남산에 5m이상이 되는 불상들이 많이 만들어진 것에서 정치적 의미를 가진 불상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열암곡사지와 불상
Ⅲ. 열암곡사지 석조불상의 조각사적 의의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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