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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정화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09집
발행연도
2018.12
수록면
71 - 108 (38page)
DOI
10.52271/PKHS.2018.12.10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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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서 ‘헤테로독시 클럽((Heterodoxy Club)’이라는 여성들만의 토론 모임이 만들어졌다. 1910년대 그리니치빌리지는 여러 지식인, 예술가, 운동가에게 일종의 정치적 해방구였고, 많은 급진 인사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헤테로독시 클럽을 창시한 마리 제니 호우(Marie Jenny Howe, 1870-1934)는 열렬한 참정권 운동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참정권 획득 이후 여성 운동의 새로운 정치학이 필요하다고 인식하였다. 호우는 여성 운동 모두를 아우르는, 참정권 보다 더 큰 정치학을 페미니즘이라는 신조어로 정의하였고, 이에 동조하는 많은 여성들을 규합하여 여성과 관련된 온갖 쟁점을 논의하였다. 그동안 헤테로독시의 역사는 페미니즘 연대기 안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헤테로독시를 통해 이 시기 여성운동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참정권에서 한 단계 도약한 새로운 사유를 보여주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주로 1870년대나 1880년대에 태어나 격렬한 참정권 운동의 와중에 성장한 헤테로독시의 여성들은 무엇보다 ‘여성권리’라는 수사에 익숙한 상태였고, 가족의 압력에서 벗어나 작가, 예술가, 노동운동가 등 전문 직업인으로 살았다. 그들은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가 참정권론자와는 구분되는 ‘페미니스트’라 인식하기 시작했고, 출산 조절과 섹슈얼리티의 자유, 심리의 해방 같은 당대의 가장 급진적이고 첨예한 페미니즘 담론을 만들어나갔다. 물론 이들이 모든 면에서 일치된 견해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헤테로독시의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의 목표와 대안을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차이를 보였던 점에서, 20세기 초 페미니즘의 풍부함을 확인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이단의 여자들, ‘페미니스트’가 되다
Ⅲ. 새롭게 말하기, 사적 경험의 정치화
Ⅳ. ‘차이’와 긴장: 섹슈얼리티의 자유와 심리의 해방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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