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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경일 (경성대학교)
저널정보
효원사학회 역사와 세계 역사와 세계 제54집
발행연도
2018.12
수록면
35 - 62 (28page)
DOI
10.17857/hw.2018.12.5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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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 해의 동북쪽에 자리한 항구 도시 트리에스테는 최근 100년 동안 이탈리아인들과 舊 유고슬라비아의 여러 족류집단 간에 벌어진 충돌과 대립으로 점철된 곳이다. 파시스트의 집권으로 본격화된 강압적인 이탈리아화와 제2차 세계대전 말 유고슬라비아 레지스탕스가 자행한 이탈리아인 학살은 그 고통과 비극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런 대립의 양상과는 반대로, 20세기 초반까지 트리에스테는 여러 족류집단들의 용광로이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계시민주의의 대표 도시였다. 본 연구는 이 대조적인 모습들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 두 가지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나는 언제부터 트리에스테에서 세계시민주의적 특징이 나타났는가이며, 다른 하나는 어떤 연유에서 개방적인 혼종성을 몰아낼 민족주의 흐름들이 발흥했는가이다. 그 해답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 도시의 발전과 변화를 19세기 중엽을 구분선으로 삼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트리에스테는 1719년 자유항 지정을 계기로 오스트리아의 지원 속에서 국제항으로 꾸준히 성장하는 한편으로, 도시의 자치를 중시하는 중세적 특징을 견지했다. 그런 가운데 이탈리아어가 공통어로 사용되기는 했지만, 상업적·산업적이해관계를 공동 목표로 삼아 지중해 각지에서 모여든 이주민들의 다문화적 특징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산업화의 전개와 더불어, 특히 19세기 중엽에 대거 이주한 슬로베니아인들이 부르주아지의 지배력과 이탈리아어의 언어 우위에 반발하면서 갈수록 독자적인 민족 정체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위협에 맞서, 이탈리아인들도 때마침 고조되던 실지회복운동으로 경도되어갔다. 결국 코무네적 자치 전통을 외벽 삼아 다양한 족류·문화 공동체들의 자율성을 존중해온 이 도시는 민족주의의 거센 파도 앞에서 대립의 길로 치달았다.

목차

국문초록
들어가는 말
Ⅰ. 자유항 위에 꽃피운 세계시민주의 : 18세기의 트리에스테
Ⅱ. ‘족류’ 공동체와 ‘정치’ 공동체 사이의 갈등 : 19세기 중반 이후의 트리에스테
나가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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