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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희국 (장로회신학대학교)
저널정보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사상과 문화연구원 장신논단 장신논단 Vol.51 No.1
발행연도
2019.3
수록면
11 - 38 (28page)
DOI
10.15757/kpjt.2019.5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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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한제국) 장로교회는 1907년 「헌법」에 기초하여 전국 조직체인 노회(Presbyter)를 창립했고, 이 노회가 1912년 총회창립으로 발전했다. 이 동안에 1910년 대한제국이 몰락했고 한반도에는 일제의 식민 지배가 시작되었다. 국가주권을 빼앗긴 나라에서 그 땅의 국민인 장로교회 교인들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대의민주주의제도의 헌법을 가졌다. 교단의 헌법은 일제의 권가권력에 예속되지 아니하는 자치와 자립을 보장받는 근거였다. 이것이 1919년에 장로교회 교인들이 민족 독립을 위한 31운동에 참여하고 또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배경이라고 본다.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조직되는 과정에서 제정된 최초 헌법인 「임시헌장」 제1조와 제 2조에는 장로교회의 헌법에 상응하는 공화제와 대의민주주의가 명시되었다. 그 임시헌장과 장로교회 헌법 사이에는 공통성이 있는데, 그것은 민주공화제이다.
민주공화제의 뿌리가 되는 ‘민’(民)에 대한 의식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구한말시기까지 우리나라에는 정치의 주체로서 국민(國民)이란 개념이 부재했고 피지배층인 백성(百姓)의 개념이 일반적이었다. 그 백성이 민권(民權)을 요구하기 시작한 때는 1898년 독립협회가 주관한 대중 집회인 ‘만민공동회’였다. 민(民)이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는 계기로 작용한 사건은 1905년에 체결된 ‘을사조약’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논문작성의 동기, 연구방법, 선행 연구
Ⅱ. 19세기 말, 민권(民權)의 요청이 대두
Ⅲ. 1900년 장로교회에서 시작된 대의민주주의 제도
Ⅳ. 을사조약(1905) 직후 입헌정체론의 부상, 장로교회의 헌법제정
Ⅴ. 한일합방(1910) 이후, 장로교회의 총회 창립(1912)
Ⅵ. 1919년 3 · 1운동과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개신교(장로교회)
Ⅶ. 요약과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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