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22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95 - 130 (3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글은 조선 후기 문학사에서 하나의 획을 그은 문인이 이옥의 문학이 갖는 문학사적 의미를 조명하는데 목적을 두고 기획되었다. 주지하다시피 이옥은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적 성향이 패사소품체였다는 이유로 과거에 나아갈 수 없었으며 그가 41세가 되던 해에 辭免令이 내려 비로소 자유스런 몸이 되었을 때 까지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여러 차례에 걸친 正祖의 譴責과 당시 士族에게는 정말로 慘憺한 刑罰인 두 번의 充軍 등 그에게 내린 가혹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그는 같은 時期의 名士 들이 正祖의 嚴重한 명령에 따라 자신이 지닌 문학의 방향을 돌려 正祖의 政治敎化에 順應하는 입장을 취했지만 이옥은 끝내 자신의 문학적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문학을 생명으로 여기며 어떤 무엇과도 바꾸거나 포기할 수 없었기에 그의 창작 활동은 변하지 않았고 더욱 치열하게 자기 탐구와 자기 표현에 열중하였다. 그가 추구한 문학에서 문학사적 의미를 脫中心的 글쓰기에 따른 超越雅俗의 문학을 하고자 하고 眞情의 文學과 情感과 個性을 重視하였으며 우리 固有語에 대한 認識과 民族文學的 志向, 小品과 小說 重視의 문학, 女性 重視의 文學을 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그의 문학은 바로 주자학적 문학관인 載道之器 의 문학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思考와 純正文學에 權威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앞으로 있을 조선후기 民族文學論의 擴散을 豫見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38)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