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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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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불교학연구회 불교학연구 불교학연구 제56권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201 - 228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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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유교적 질서를 재건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충의 현창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충신열사들에게 관직을 추증하고 사당을 건립하여 향사하였으며 국가의 사액이 내려졌다. 이러한 충의 현창 사업의 영향을 받아 18세기부터 임진왜란 충의 승려인 사명대사 유정과 서산대사 휴정에 대한 사당 건립과 사액이 추진되었다. 먼저 1738년(영조 14) 밀양에서 사명대사 사당인 표충사를 세우고 임금의 사액을 추진하여 성공함으로써 불교계에서 임진왜란 충의 승려인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사당 건립과 사액의 가능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어서 서산대사 사당과 사액의 필요성을 가장 먼저 인식한 곳은 해남 두륜산 대둔사(지금의 대흥사)였다. 대둔사 승려들은 1788년(정조 12) 서산대사의 의발이 전해지고 있으며 청허계의 중심 사찰인 대둔사야말로 서산대사 사당과 사액의 정당성을 갖는 곳 이라며 사액의 당위성을 조정에 건의하였고, 정조는 서산대사 사당에 ‘표충’의 편액을 하사하였다. 그 다음에는 묘향산 보현사 승려들이 서산대사가 머물다 입적한 곳이 보현사임을 들어 서산대사의 사당을 짓고 조정에 사액을 요청하였다. 정조는 보현사의 요청이 정당하다며 1794년(정조 18)에 ‘수충’의 편액을 하사하였다. 아울러 두륜산 표충사와 묘향산 표충사에 정조의 친필 「서산대사화상당명병서」를 하사하기까지 하였다. 보현사 사액의 소식을 들은 금강산 건봉사 승려들이 1797년(정조 21)에 건봉사야말로 사명대사의 출가 수행처라는 점을 들어 사액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때는 조정에서 건봉사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건봉사 승려들은 임금의 사액을 받아내지는 못했으나 1800년(정조 22)에 사명대사의 사당인 수충각을 짓고 사명대사 비석을 세웠다. 이로써 18세기 불교계의 충의 승려 사액 운동은 끝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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