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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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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역사 여성과역사 제22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01 - 13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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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왕실 비구니 사찰인 정업원의 치폐과정과 역대 주지의 특성을 통해 조선전기 정업원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대부터 왕실여성의 출가사실이 확인되며, 정업원이라는 사찰명은 고려시대부터 나타나고 있다. 조선시대 정업원은 이같은 전통을 이어받아 왕실여성들의 출가처 내지 기도처로 이용되었다. 정업원은 조선초부터 왕실의 지원을 받으며 운영되었지만 유학자 관료들의 철폐 요청 등에 의해 세 차례 철폐되었다. 하지만 왕실에서 불교신앙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세조와 문정왕후에 의해 정업원은 복설되었고, 공식적으로 폐사된 시기에도 정업원 비구니들은 승가공동체를 계속 영위해 나갔다. 조선전기의 정업원은 왕실로부터 정기적인 경제적 지원을 받았으며, 승려들의 도성 출입이 금지된 상황에서도 궁궐 바로 곁에 위치한 채 왕실사찰로서의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실록에서 확인되는 정업원 주지는 총 7명으로, 혜화궁주 이씨, 소도군 부인 심씨, 정안왕후 언니 김씨, 비구니 해민, 유자환 부인 윤씨, 수춘군 부인 정씨, 연산군 후궁 숙의 곽씨 등이다. 이들 모두 조선전기에 해당되는 인물들로, 비구니 해민을 제외하면 모두 왕실과 친인척 관계인 여성들이었다. 또한 해민과 정안왕후 언니 김씨, 유자환 부인 외의 나머지 4명은 모두 남편이 정적에 의해 살해되거나 시가, 친정이 역적으로 몰려 멸문지화를 당한 경우였다. 이로 볼 때 정업원은 몰락한 왕실여성들이 의탁할 수 있는 의지처로 기능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업원에는 유자환의 부인 같은 일반 사대부가 여성들도 포함돼 있었는데, 이들 또한 안전하게 출가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정업원을 선택한 것이었다. 조선전기에는 왕이 훙어한 직후 후궁들이 출가를 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이들은 정업원으로 가지 않은 대신 정업원을 통해 승려계(僧侶戒)를 받았다. 이처럼 정업원은 조선왕실의 불교신앙을 이어나가는 신행기구로 활용되었으며, 몰락한 왕실여성들이 의지할 수 있는 의지처로 역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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