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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과학원 개념과 소통 개념과 소통 제20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5 - 45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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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고종시대 정치적 갈등의 기조(基調)는 완권을 둘러싼 정치투쟁에 있었다는 전제하에 대한제국의 수립에 이르리까지의 정치사를 새로 조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재위기간에 걸쳐 고종의 변치 않았던 정치적 목표는 왕권을 강화하고 왕실의 위신을 제공하는 데 있었다. 이는 이른바 재화세력을 포함한 양반관료들이 반발을 초래했다. 임오군란 이후 기무처를 중심으로 왕권을 제한하고 청(淸)의 원조로 국가 기능을 재건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이에 대해 고종은 친일적 성향을 띠는 개화당을 중용하고 러시아 황제와의 밀약을 추진하는 것으로 맞섰다. 갑오개혁과 독립협회운동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왕권의 제도적 제한이었다. 독립협회운동의 실패 경험을 통해 외국의 원조에 기초한 위로부터의 개혁이 갖는 한계를 자각하고, 민(民)의 계몽과 그 정치적 동원을 시도했다. 만민공동회는 '민권'(民權)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만들어질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구호인 '충군애국'(忠君愛國)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민의 지지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개혁세력이 끝까지 극복하지 못한 장애물은 근왕 주의세력의 공격이나 외국의 간섭이 아니라 민의 심성에 깊이 각인된 국왕에 대한 전근대적 충성심과 왕권에 대한 동경(憧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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