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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72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243 - 266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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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국회 소장파는 이승만 정권 초기 진보적이며 저항적인 세력으로 항상 언급되지만, 실상 이들에 대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이 글은 제헌국회 소장파의 핵심 세력이었던 성인회의 결성 과정과 이들의 활동을 통해서 소장파의 성격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성인회는 김약수 중심의 신당 결성을 표방하며 결성된 원내 조직이었다. 그러나 성인회는 김약수의 정당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이는 내부적으로 이념적, 조직적 결속이 불완전하였기 때문이다. 결속력이 강하지 못했던 이유는 최초의 결집과정과 관련이 있다. 이들은 외군철수에 대한 공통적 동의를 기반으로 모였지만, 이들의 결집에는 신익희, 지청천 등의 국회 내 주요 세력의 재편에 따른 대응작용인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단정 추진 세력들도 참여하게 되었고, 반공주의를 둘러싼 입장의 차이도 있었다. 이러한 이질성이 외군철수라는 민족주의적 이슈로 봉합된 상태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성인회는 해방공간의 중도세력과 조직적 계승관계가 있다고 하기 어렵다. 외군철수, 남북 협상, 농민적 농지개혁 등 내용의 측면에서 중도세력의 입장을 계승한 측면은 있다. 성인회는 외군철수라는 민족주의적 이슈를 중심으로 원내에서 세력을 확장했다. 이를 통해 동인회와 통합하여 동성회를 결성하였고, 김구, 김규식 등 원외의 남북협상 세력과 접근하는 경향을 보였다. 동시에 성인회는 농지개혁의 실현을 위해 원내의 제 세력, 나아가 이승만과도 공동보조를 취하였다. 이런 적극적인 활동과 영향력 확대는 원내 이승만 세력의 입지를 위협하였고, 결과적으로 국회프락치사건으로 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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