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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 민족문화연구 제69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351 - 380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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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에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사림세력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경상도 지역에서 지역사회 주도세력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임진왜란은 조선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후 사족들이 지역에서의주도권을 잡게 된 것에는 임진왜란 당시 사족들의 의병활동에도 상당한 원인이 있었다. 상주지역 사족들은 임란 초기 구심점을 잃고 山谷으로 피신하였으나, 7월부터 각 지역에서 의병 起義가 이루어지자 상주지방에서도 李逢의 倡義軍과金覺의 尙義陣, 金弘敏의 忠報軍 등 여러 방면에서 의병이 조직되게 되었다. 이렇게 조직된 의병들은 각각 매복전을 시행하여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이들은 상호 연합을 시도하기도 하였으나, 관군에의 의존도가 높았기때문에 독자적인 성과를 크게 올리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이들 상주 사족들의 의병활동은 전쟁이 종식된 후 향촌에서 그들의 주도권을 확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종식되자 상주지역의 사림들은 지역사회의 재건을 도모하였다. 상주지역의 재건과정은 주로 의병에 참여했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도남서원의 창건을 발의한 것은 정경세를 비롯한 상주 사족들로 류성룡의 문인으로 좌정한 자들이 중심이었다. 정경세와 전식 등 상주지역 서애학단 사림들은 도남서원을 창건하여 상주지역 퇴계학파의 구심점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정경세를 비롯한 상주사림들이 상주에 연고가 없는 五賢을 상주의 서원의주향으로 세우고자 한 목적이기도 했다. 정경세는 같이 의병활동을 했던 宋亮⋅ 金覺 등 6인과 더불어 공동으로 서원 창건을 발의하고, 창건통문을 직접 작성하였다. 이러한 정경세 등의 서원건립 시도는 당시 목사였던 김상용과 충돌을빚게 되었다. 정경세를 비롯한 서애문인들은 도남서원을 상주지역의 교화의 중심지로 삼고자 하였지만, 목사 김상용은 향교의 재건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전⋅이준 형제가 전쟁 이후 상주지역에서 향안의 중수⋅향약을 우선 시행하고자 하였던 것도 지역 차원에서 교화를 통한 전후 복구를 중시한 상주지역 서애문인들의 향촌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상주지역의 서애문인들은 상주지역의 현안이 전쟁으로 황폐해진 전답 등을蘇復하여야 하는 것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충격은 이들에게 경제적인 蘇復보다는 다른 차원의 질서를 건립하도록 하였다. 전쟁과정에서 나타난 인륜의 파괴는 이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들은 결국 임란이후 질서 재편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예교의 복원을 들고, 이를 위하여 서원의 창건과 향안의 중수 및 향약의 실시를 시도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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