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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일본사상사학회 日本思想 日本思想 제33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261 - 282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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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다양한 외국의 정보를 수집하고, 취사·선택, 비판·변용을 거쳐 ‘일본다움’을 형성하여 왔고, 그것을 일본인들은 ‘야마토 다마시(和魂)’라고 하였다. 이 ‘일본다움’ 즉 ‘화혼’을 제작 계승 보존하기 위하여 ‘화혼한재(和魂漢才)와 ‘화혼양재(和魂洋才)’라는 외래문화 수용공식이 설정 되었다. ‘화혼한재’란 중국의 학문을 수용하지만, 그것을 일본 고유의 정신에 입각하여 소화한다는 입장이다. 그것이 다시 명치유신(明治維新) 전후에는 서양의 문화가 전격적으로 수입되면서 ‘화혼양재’라는 표현으로 전환되었다. 즉 ‘화혼한재’와 ‘화혼양재’는 일본이 중국과 서양 등 외래문화 수용의 프레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거기에는 공통적으로 일본의 외래자에 대한 심리 패턴이 보인다. 즉 처음 외래문화를 수용할 때는 숭배, 흠모, 사모, 동경의 자세를 취하여 모방에 힘쓰지만, 차츰 일본 전통에 응용하면서 비판하고, 나아가 반발 대항하면서 ‘일본다움’을 형성 유지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이러한 외래문화 수용의 프레임은 같은 동아시아권의 중국이나 조선에는 보이지 않았다. 중국은 문화적으로 자기 완결적(完結的)이었기 때문에, 문화란 국외에서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전해지는 자생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였다. 따라서 전통을 존중하고 외래의 것을 낮추어 보는 존내비외(尊內卑外)가 근대 이전 중국의 외국문화 수용의 프레임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한편 조선은 육지로 연결된 중화세계 안에 위치하여, 동아시아 공용한자로 씌어진 중국 문화를 거부감 없이 수용하여 사용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 이전에는 대체적으로 특별한 자의식 없이 중국문화를 수용하는 입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달랐다. 일본의 외국 연구의 출발점은 철저하게 지피지기(知彼知己)이다. 즉 상대방의 상황을 살피는 ‘적정정찰(賊情偵察)’을 통하여 ‘일본다움’을 형성하였다고 말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화혼’을 유지 계승하기 위해서는 국제상황의 변화에 대한 주의가 필요했다. ‘화혼’은 결국 문화수용의 접경에서 활약하면서, 양쪽 문화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것에 능한 ‘양다리 걸치기’의 학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말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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