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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서양중세사학회 서양중세사연구 서양중세사연구 제44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93 - 323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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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루터 사건’(Causa Lutheri)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프리에리아스와 도미니쿠스 수도회의 초기 활동에 대해 주목한다. 루터 사건은 교황권을 호위하고 있던 도미니쿠스회와 작센 선제후 주변에서 개혁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던 아우구스티누스회 사이의 갈등 구도로 인해 증폭되었다. 테첼, 프리에리아스, 그리고 카예탄에 이르기까지 도미니쿠스회 형제들은 루터의 논제에 교황권과 로마 교회에 대한 공격이 담겨있다고 판단했다. 그로 인해 그들은 면벌부 남용이라는 도덕적·사회적 문제해결이 아니라, 신학 특히 교회론적 입장에서 루터를 추궁했다. 특히 교황청의 공식적 입장을 대변한 프리에리아스는 루터의 논제에 교황 중심의 교회론을 부정하는 주장이 담겼음을 간파하고 교황권 문제를 핵심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루터는 그의 글을 통해 면벌부 남용에 대한 개선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자신의 글이 교황권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된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되었다. 그는 또한 교황 및 교회의 권위에 대해 분명한 입장도 점차 요구받았다. 루터의 신학사상은 이처럼 궁지에 몰리면서 단기간 내에 더욱 급진화되었다. 그는 교황과 교회 권위를 비판하는 준거로서 성경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으며,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확신하는 관점을 밀고나갔다. 루터가 이끄는 종교개혁의 방향은 초기 가톨릭 비판자들과의 격렬한 논쟁을 거치면서 조정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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