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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우재병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77호
발행연도
2019.11
수록면
105 - 131 (27page)
DOI
10.21490/jskh.2019.11.77.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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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에서는 5세기 후엽과 6세기 전엽경 백제 서남부지역에서 관찰된 새로운 무덤양식 변화의 배경을 찾고자하였다. 5세기 후엽경, 백제 서남부지역 최고위급 수장묘에는 백제 중앙 석촌동 고분군의 방형 적석총과 유사한 무덤들이 채용된다. 이 양상의 특징 중에는 방형이라는 무덤 형태 뿐만 아니라 무덤 규모와 축조 방식의 유사성도 포함된다. 백제 서남부지역 최고 수장묘 중 하나인 나주 정촌고분 사례를 관찰하면, 이 고분의 외관이 백제 중앙의 적석총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분구 축조 과정에는 積石기법 보다는 주로 葺石기법이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정촌고분의 분구 축조 방식을 자세히 관찰하면, 커다란 돌을 가공하여 분구 하단에 배치한 축조 양상이 매우 특징적이다. 이 축조 방식은 일반적인 분구 즙석 기법과는 다른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석촌동 3호분 등 백제 왕급 적석총의 하부 적석 기단의 모방으로 판단된다. 즉 분구 전체를 적석으로 축조하지는 않았지만, 백제 중앙의 적석총과 유사한 외관을 부분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양상은 백제 중앙과의 위계에 따른 축조, 경제적인 부담을 최소화한 축조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백제 중앙과 지방 사이의 무덤 양식 공유는 백제 중앙과 지방 사이의 강력한 정치적 연대 강화책의 일환이었다고 판단된다. 이들 수장묘 분구에 원통형 토기를 장식하는 왜 양식 장례 의례가 추가된 것은 백제와 왜 사이의 외교적 연대 강화를 과시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6세기 전엽경이 되면, 백제 서남부지역에서는 왜 양식 전방후원분이 새롭게 출현한다. 6세기 전엽경 일시적으로 등장하였다가 쇠퇴한 이들 전방후원분은 백제와 왜 사이의 긴밀한 외교관계 강화를 고구려에 과시하기 위한 정치적 기념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주로 천도한 직후의 백제는 중국 남조, 대가야 등 가야서부지역 정치체, 왜를 잇는 외교적 연대 강화를 통하여 고구려의 군사적 위협을 저지하려 하였다. 이들 우호적인 동맹국의 최고급 무덤 양식을 채용하는 백제의 외교전략 시행은 이 시기 최고조에 달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국가 위기 상황과 무덤 양식 공유의 상관관계
3. 고구려의 군사적 위협이 가져온 방형 무덤의 확산과 전방후원분의 출현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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