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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金昌錫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96호
발행연도
2019.12
수록면
133 - 165 (33page)
DOI
10.37331/JKAH.2019.12.96.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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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중성리비에 나오는 宮에 관해서 종래 다기한 이해가 제시되었다. 그 이유는 궁의 문제가 분쟁의 당사자가 누구이고 어떤 성격의 존재이기에 이처럼 다수의 인원이 동원되었고, 그 해결을 위해 복잡한 절차를 밟았는가 하는 분쟁의 본질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성리비의 기록을 통해서 豆智沙干支宮과 日夫智宮이 牟旦伐喙의 作民을 빼앗아 분쟁이 일어났고 중앙의 고위층이 이를 환원하도록 판결하였으며, 패소한 두지사간지의 使人이 이 조치를 수용하는 구두 선언을 했고 이상의 과정을 典書가 문자로 기록했으며, 다시 이상의 전체 내용을 沙喙의 인물이 구두로 포고했음을 알 수 있다. 두지사간지궁과 일부지궁은 훼부 혹은 사훼부의 유력자인 두지사간지와 일부지가 소유한 궁을 가리킨다. 지역 정치체의 首長이 살던 居所가 그 원형이며, 궁은 점차 생산 활동에도 간여하게 되었다.
3세기 후반~5세기에 모단벌훼가 흥해 지역에 진출했다. 그 부장이 경주에 거처하면서 奈蘇毒只 등 5개 촌락에 사는 주민의 일부를 작민으로 사역했다. 이를 탈취한 두지사간지와 일부지의 궁 역시 중앙에 있으면서 果西牟利라는 대리인을 보내 생산을 감독했다. 왕권은 部 혹은 부의 유력자를 통해 지역에 대한 지배와 수취를 공유하는 한편 중심 촌락에 道使를 파견하여 직접 통치를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촌락의 수장을 아직 村主化시키지 못했고, 이로 인해서 작민은 중앙의 宮과 현지 首長에게 兩屬되어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탈취와 반환의 대상
III. 宮의 실체
IV. 사로국의 興海 지역 진출과 立碑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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