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일규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96호
발행연도
2019.12
수록면
249 - 288 (40page)
DOI
10.37331/JKAH.2019.12.96.249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진흥왕 순수비인 북한산비 · 마운령비 · 황초령비 세 곳에서는 유공자에게 爵과 物을 내리겠다는 문구가 거의 정확히 똑같은 표현으로 나타난다. 북한산비는 마운령비 · 황초령비와 같이 568년에 세워졌다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북한산비의 표현과 구성, 내용등이 다른 두 비와 동떨어져 있는 점이나, 진흥왕이 북한산을 순수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그 건립 연도는 555년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순수비의 건립 시기와 장소가 서로 크게 차이가 있음에도 해당 문구의 표현이 일치하는 것을 보면, 이는 신라 정부 차원에서 일찍이 확정해 둔 문구로 추정된다. 신라가 새로 획득한 영토에서 유공자를 포상한다는 국가적 시책을 표방 · 재확인할 때면 해당 문구를 반복해 사용했던 것이다. 같은 시기 신라의 다른 금석문이나 중국의 율령을 함께 고려하면, 이러한 시책을 뒷받침하는 법제도 마련된 상태였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시책은 신라가 새로 얻은 주민들에게, 기존의 신라 백성들에게 통용되던 법제를 동일하게 적용한 것이었다. 그 실시 배경에는 정복 전쟁 당시의 현실적 요구와 그에 따른 인식의 변화, 또 제도를 마련하고 지방관을 파견하는 등의 지배체제를 갖춰나갔던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신라는 이러한 시책을 토대로 새 영토와 주민을 기존의 지역 · 백성과 동질화시키고, 다시 향후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다른 해에 세운 비, 똑같은 문구
III. 새로운 국가 시책의 확립
I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20-911-0002334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