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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강화는 직물로 유명한 고장이었다. 강화는 역사적 질곡을 겪으면서도 ‘직물의 고장’이라는 명성을 공고히 하였으나, 국가의 경제개발 정책과 값싼 직물의 등장, 환경문제 등으로 인해 여러 종류의 직물들은 점차 소실되었으며, 이에 따라 직물 산업은 쇠락하였다. 그 결과 현재 직물 중 소창을 생산하는 공장만 유일하게 남아있는 실정이다.
때마침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2019년 인천 민속문화의 해’ 사업의 일환으로 ‘소창’을 선정하여 조사·연구했다. 1년 동안 소창의 직조과정과 직기, 소창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연구 내용이었다. 조사 및 연구를 통해 소창의 가치를 조명하는 성과를 냈었지만, 강화가 타 지역에 비해 직물산업이 발달할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해서는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다. 게다가 사료 또한 충분치 않아 연구의 다양성이나 전문성에는 한계가 있었다. 심지어 직물과 관련하여 다양한 각도로 방대한 양의 연구가 축적된 데 비해, 강화지역의 직물 연구는 매우 소략하다.
현재 강화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소창 공장은 강화 직물이 처한, 소외된 현실을 증명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이 소외된 강화 직물, 특히 소창에 주목하고자 한다. 강화 직물의 등장 배경과 역사적 발전 및 쇠퇴과정을 살펴보면서, 강화지역에서 직물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원인 및 요인을 고찰하였다. 그 과정에서 현재 강화 직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소창의 역사적 가치를 재고하였으며, 해방 이후 쇠락한 직물 산업의 현실을 직시하는 의미로 소창 공장의 운영 현실을 두루 조망하는 한편, 소창의 경제적 효용성에 입각하여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우리나라 직물업의 종사자는 주로 부녀자들이었다. 일종의 부업으로 겸했기 때문에, 각 가정에 족답기 한 대씩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편 러일전쟁 직후 조선에 대한 독점권을 장악한 일본은 부녀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생산기반을 확장하기 위해, 각 지역마다 농업모범장과 공업전습소를 설치하는 등 경제구조를 개편하였다. 만주사변 이후 일본은 지리적으로 근접한 조선을 본격적인 투자대상으로 삼았다. 강화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강화는 1910년대부터 직물 산업의 중심지로 주목을 받았다. 가내수공업 위주로 직물을 생산했던 강화는, 지역유지 황우천(黃祐天)과 김동식(金東植)의 노력으로 기계식 직기를 들여오며 획기적인 전환을 맞았다. 기계식 직기의 도입 및 기술 향상으로 강화에는 조합과 공장이 설립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공업화되었다. 강화에서는 견직, 인견, 마포, 소창 등 다양한 직물들을 생산하는데 일조했다. 인견직은 가격이 저렴하고 광택과 감촉이 좋아 인기가 많았다. 마직물의 경우 강화산업조합에서 장려하여 활성화시킨 직물이었다. 소창은 무명이라고도 불렸는데, 당시 직물들 중에서 고급 면사에 속했다. 인견직이나 마직물 등은 나일론이나 중국산 직물 등으로 대체되었지만, 소창은 우수한 품질과 기능성으로 인해 아직까지 유일하게 생산되는 직물이다. 소창의 생산연도와 기원은 정확히 파악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기록을 참조했을 때 일본의 면직물인 ‘고쿠라오리(小倉織, ゴクラオリ)’가 우리말의 ‘소창’으로 대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직물 산업이 강화에서 유독 발달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 강화 부녀자들의 정교함과 꼼꼼한 손재주와 풍부한 노동력, 개량직기의 도입과 공동작업장 운영, 물건을 팔기 위한 행상의 구조적인 완비 등이 발달 요인들이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강화의 ‘직물의 고장’이라는 입지는 변함이 없었다. 1975년 기준 15개의 직물공장이 있었고 기사(技師)를 포함하여 종업원 수는 1,000명이 넘었으며, 군소공장까지 감안한다면 그 숫자가 더 많았다. 그러나 국가 경제개발정책의 영향 및 값싼 직물들의 등장으로 인해 강화의 직물산업은 타격을 받는다. 게다가 정화시설과 관련한 환경문제가 제기된 바람에 섬유산업의 중심지가 대구로 이동하였고 결국, 직물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게 된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직물의 고장’이라는 옛 명성이 무색하게, 강화에는 일부 소규모의 소창공장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직물을 짜는 현장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어서 강화의 직물은 과거의 뒤안길로 사라지나 싶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잊혔던 전통을 복원·계승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 연장선상에서 강화의 전통, 직물 산업이 재조명되었다. 지자체 주도로 공모사업을 벌였고, 이에 따라 옛 공장과 공장부지가 새롭게 단장되었다. 그 결과 도심의 흉물로 남아있던 옛 평화직물 공장과 한옥은 소창을 짜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관광지로써 탈바꿈할 수 있었다. 이러한 예시 외에도 강화 직물 산업의 부흥을 위한 여러 시도와 결실이 있었지만, 소창 공장이 처한 현실적인 문제는 여전히 어렵기만하다. 안정적인 인력 수급과 확보 부족, 열악한 산업 환경, 표준화·규격화의 부재, 공장 조합원들의 내적인 역할론의 부재, 면사의 원료구입과 생산품 판매에 대한 불안정성 등의 문제는 소창 공장이 안고 있는 불안한 현실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해결방안으로는 다음과 같은 방안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내적 해결방안으로는 소창 제조업자들의 조직화 및 품질 관리, 그리고 지속적인 교육에 대한 체계 구축, 소비자들의 기호 파악, 직물공장 가동에 관한 획기적 전환이 필요하며, 외적인 해결방안으로는 상품개발업자와 직물공장이 참여하는 단체의 결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점은 직물공장의 발전을 위한 법적인 기반 강화와 행정·재정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관계자들의 많은 관심과 충분한 노력이 있다면, 소창은 역사상의 유물로만 남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