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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동방한문학 제82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33 - 166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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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岡 李康秊[1858~1908]은 군사 운용과 전술의 전문가인 무관으로서 민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을 계기로 倡義 擧兵한 의병장이다. 그는 경상북도 문경 태생이지만 제천으로 柳麟錫[1842~1915]을 찾아가 그의 문인이 되는 동시에 유인석 의병 부대의 유격대장으로 활약하였다. 또 李恒老[1792~1868]의 󰡔華西集󰡕 간행에도 적극 관여하는 등 학문 연찬에도 힘을 썼으니, 그의 강력한 무장 항쟁은 위정척사론의 이념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강년은 의병장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다수의 詩文을 남기고 있고 그것들의 상당수는 그의 투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聞國變世禍, 漸至板蕩, 不勝憤激, 仍賦一律.」은 거병 즈음의 근심과 두려움, 육체적 고통과 투쟁의 의지가 진솔하게 토로된 작품이다. 「被擒時口號」는 적에게 체포되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의연한 결기를 보여준다. 또 「囚在日憲兵所口號」는 헌병소에 구금되어 있으면서 쓴 시로, 구차히 살아남지 않을 것이며 죽어서도 항쟁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 「告訣八域同志」는 옥중에서 전국의 동지들에게 영결을 고하는 글로, 거병의 계기, 무장 항쟁 기간, 戰績, 체포당한 경위, 사형에 직면한 심정, 투쟁의 이념을 기술하고 있다. 이 글에서 이강년은 반역자들이 충신과 선량한 사람들을 무고하게 살해하는 상황에서 양심의 격동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 거병의 원인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13년간 2차례 기병하였고 전투 횟수는 30여회, 전적은 왜적 100여명을 죽인 것이라고 하였다. 이강년은 인륜이 사라진 상황에 대하여 심각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양심에 격동되어 거병하였으며, 존화양이의 의리를 위해 殉死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남은 동지들에게 綱常을 돈독히 하라고 당부하였다. 이것이 이강년이 지닌 위정척사 의식이다. 󰡔雲岡遺稿󰡕에는 15편의 檄文類가 전한다. 그의 격문은 선명한 위정척사의 이념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것들은 군사와 무기, 군자금 조달을 독려하는 격문, 伊藤博文을 통렬히 꾸짖는 격문, 일제의 앞잡이로 온갖 간악한 짓을 일삼는 一進會를 준엄히 꾸짖은 효유문, 각국의 영사관에 일제의 침탈을 고발하고 조국 해방의 타당성을 알리는 통고문, 군대의 기율을 알려 경계하는 글이다. 그중에서 募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격문으로서 전형성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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