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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오세호 (독립기념관)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71집
발행연도
2020.8
수록면
129 - 16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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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내전기 소비에트 러시아 적군이 동쪽으로 진출하면서 극동지역의 정보수집과 함께 동아시아 소수민족 혁명사업의 중요성도 높아졌다. 이에 소비에트 러시아 중앙지도부와 지방 볼셰비키 세력들은 동아시아에서의 혁명사업 지원 정책을 시행해 나갔다.
그러나 소비에트 러시아 중앙 지도부와 지방 볼셰비키들은 극동공화국 설립을 둘러싸고 갈등했다. 극동공화국이 설립되자, 시베리아국을 중심으로 한 지방 볼셰비키 세력과 소비에트 러시아 중앙 지도부는 동아시아 혁명사업을 지도할 연합기관 설립 문제를 두고 경쟁적으로 한인과 중국인 등을 자신의 기관으로 끌어들여 주도권을 가져오고자 했다.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협력해 온 초기 한인사회주의 세력들도 자신들의 성격과 지역, 이해관계에 따라 각자의 활동을 펼쳐 나가는 한편,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동양국을 중심으로 한 한인사회주의 세력의 통합 노력은 시베리아국의 정책 변경으로 변화를 맞이했다. 그러나 1920년 8월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이 동아시아 혁명 사업을 극동국에 일임하고, 코민테른 집행위원회가 박진순을 전권위원으로 임명하자 한인사회주의 세력을 둘러싼 상황은 다시 한번 급변했다. 시베리아국은 중앙의 결정에 반발했고, 시베리아국과 협력해 온 임시고려혁명의회 세력도 대한국민의회와 협력하며 코민테른 산하 한인부로 거듭나기 위해 조직을 재편해 나갔다.
상해에서는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결정과 동양공산당 설립문제를 두고 코민테른 동아비서부 설립을 목표로 협력해 온 한인사회당과 해외공작처 사이 노선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두 세력은 상해에 코민테른 동아비서부 설립을 목표로 ‘한인공산당’을 설립하는 데 이르렀지만, 코민테른은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양공산당을 설립하기 위해 박진순을 재외전권위원으로 임명해 파견했다. 결국 동양공산당 설립 문제를 두고 한인사회당 세력과 해외공작처 세력의 협력관계는 결렬되었다.
1921년 1월 이르쿠츠크에서 코민테른 극동비서부가 설립되자 한인사회주의를 둘러싼 상황은 또 다시 급격한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슈먀츠키는 코민테른 극동비서부를 동아시아 혁명사업의 최고지도기관으로 위상을 높이고자 했다. 따라서 슈먀츠키에게 한인부대 통합문제는 기관의 위상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극동국 한인부와 전한군사위원회는 슈먀츠키의 명령을 거부했다. 슈먀츠키는 극동국 한인부를 숙청하고, 고려혁명군정의회를 통해 통합한인부대의 지휘권을 가져오며 자신의 안을 관철시켰다. 이러한 정치·군사적 변화 속에서 한인들은 한국독립운동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자유시사변으로 나아갔다.

목차

1. 머리말
2. 소비에트 러시아 내부의 완충노선 갈등과 동양국 설립
3. 극동국과 시베리아국의 갈등과 한인사회주의 세력의 분화
4. 코민테른 극동비서부 설립과 한인부대 통합 문제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참고문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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