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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효운 (동의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71집
발행연도
2021.2
수록면
3 - 42 (40page)
DOI
10.18496/kjhr.2021.0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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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는 『三國史記』와 『三國遺事』 중심으로 복원된 가야와 『日本書紀』의 기사를 중심으로 복원된 임나라는 듀얼리즘(Dualism)이 상존하고, 임나일본부와 임나조 문제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구사가 존재한다. 그 결과 양국의 역사교육 현장에 있어서도 상이한 가야사, 임나사 인식이 교육되고 있다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들 문제점을 검토하기 위한 방법으로 『일본서기』 임나 관련 사료의 철저한 사료 비판을 통한 임나사의 재해석을 행하였다.
검토 결과를 요약하면 첫째, 가야는 任那와 加羅로 구성된 국가였지만 통일신라시대에는 가라(加良)로, 고려시대 이후에는 加耶로 명명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임나일본부’는 ‘任那倭宰’ 표기를 8세기 일본의 율령사관에 의해 왜곡되게 개칭되었다. 따라서 그 설치 주체는 야마토정권이 아니라 對倭무역과 외교를 위임받았던 임나의 ‘倭宰’집단으로 보아야 한다. 이들 집단은 532년 금관국주 김구해의 신라투항에 반발하여 안라나 주변 해상지역에 근거를 두고 임나 부흥을 위해 활동한 임나부흥군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셋째, ‘임나조’ 문제는 532년의 금관가야, 562년의 대가야의 멸망이란 2번에 걸친 가야 멸망이, 『일본서기』에서는 기년의 착오와 왜곡으로 인해 530년 전후와 562년, 622년에 걸친 3번의 임나 멸망으로 기록되었던 점에서 사료 해석의 오류를 가져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가야사의 듀얼리즘과 연구사 스펙트럼의 원인은 8세기 일본 지배층의 율령사관에 의해 편향적으로 왜곡되게 배치되고 기술된 임나 관련 사료를 20세기 근대 일본의 제국주의 식민사관과 연계하여, 문헌비판 관점이 결여된 채 해석하고 관련 연구와 학설이 확대 재생산되며 반복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선행연구의 문제점과 차별성
3. 가야와 임나
4. 가야와 임나일본부
5. 가야의 멸망과 임나
6.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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