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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세호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저널정보
한국한문학회 한국한문학연구 한국한문학연구 제82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57 - 185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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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安東金門은 丙子胡亂 당시 斥和를 주장한 金尙憲의 후손으로 서울 莊義洞 일대에 세거하여 壯洞金氏라 일컬어진다. 이들은 肅宗 대 換局政治에서 요직을 도맡았고 정치적 부침에 따라 은거를 단행하며 별서를 경영했다. 그중에서도 金壽恒이 送老菴을 경영한 永平 白雲山 別墅는 단연 그 의미가 지대하다. 己巳換局이 일어나 김수항이 사사되자 그의 아들들은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은거를 이어나갔고 이후 金昌協은 이곳에 農巖을 경영해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이들이 백운산에 은거하여 살았던 삶과 그 문학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별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면모는 조명되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백운산 별서의 경영과정을 돌아보고 그 위치를 비정하였으며 이곳이 지닌 의미를 도출하고자 하였다. 壯洞金門의 백운산 별서는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장암리 일대에 자리했다. 김수항의 송로암은 지금의 동화사라는 절이 있는 곳으로, 김창협의 농암수옥은 장암5리마을회관으로, 金昌業의 歇菴은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성장로1289번길 43-19로 비정된다. 이곳은 顯祖 김상헌의 영향이 감지되는 곳으로 일가 문인들이 경영한 은거의 별서 가운데 요지에 위치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조선 후기 당쟁사에서 은거의 지향을 표방한 곳으로 인식되었고, 김창협의 위상으로 인해 후대 문인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진 특징이 나타난다. 백운산 별서는 조선 후기 장동김문을 대표하는 별서이자 당대 은거의 상징적인 별서로 역사에 회자되는 공간이다. 향후 관련 학계의 관심과 연구를 통해 백운산 별서의 실체가 되살아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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