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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손한빈 (경기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동양예술 제50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75 - 101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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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명나라와 같이 성리학을 관학으로 채택하였고, 그러한 공통점과 성리학적 관념 위에서, 조선은 국초에 명나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많은 도움 중 하나가 바로 ‘서적’이다. 15세기의 조선은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고 국가의 기틀을 형성하고자 역사, 철학, 법제,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필요로 하였다. 그리하여 명나라에 적극적으로 서적을 요청하였고, 결국 『性理大全』과 『朱子語類大全』등의 송명이학 서적을 얻을 수 있었다. 서적 습득을 위한 노력은 16세기에도 이어졌는데, 성리학을 연구한 사림세력이 주요 정치세력이 되자 至治主義의 실현을 위한 방도로써 서적을 중시하였기 때문이다. 사림세력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에 의해 송명이학 서적을 구득하였고, 결국 『朱子大全』과 『朱子語類』 등의 여러 송명이학 서적이 조선으로 유입되었다. 전대에 이어 많은 양의 송명이학 서적이 조선으로 유입되자, 조선 문인들은 자연스레 송명이학을 깊게 연구하였다. 서적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수록, 문인들은 서적에 기록된 송명이학자들의 미학적 저술과 서론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연구의 깊이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안정을 위해 서적을 막 수집하기 시작한 15세기는 송명이학 서예사조의 시작기라고 할 수 있으며, 성리학을 주된 연구 과제로 삼는 사림세력이 등장한 16세기는 송명이학 서예사조의 심화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15세기와 16세기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우선 15-16세기의 문인들이 송명이학에 입각해 서예를 인식 및 비평하였음을 확인하였다. 15세기 문인인 하위지와 신은윤은 송명이학 특히 정주이학적 서예관에 입각해 단종과 성종에게 가르침을 전하였는데, 송명이학에 입각해 서예를 인식 및 비평한 사례이다. 그러나 16세기에 이르자 송명이학에 근거한 서예관을 가진 문인들이 이전보다 많아지고, 그 서예관 또한 더욱 확립되었다. 나아가 그들은 송명이학에 근거하여 서예를 인식하고 비평하는 수준을 넘어, 서예 창작으로도 그 체현을 확장시켰다. 정리하면, 15-16세기에 송명이학 서적이 유입되자 문인들의 서예관이 송명이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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