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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한필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24권 제2호
발행연도
2021.11
수록면
281 - 314 (34page)
DOI
10.17068/lhc.2021.11.24.2.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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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는 많은 암행어사 설화의 주인공이다. 박문수가 암행을 한 것은 1727년 영남별견어사 때였다. 별견어사는 영조대 특별히 파견된 어사로 백성을 편안하게 안심시키는 安集, 진휼을 감독하는 監賑 업무와 함께 暗行하며 수령을 감찰했다.
반면 박문수가 후일 맡았던 영남감진어사, 북도진휼사, 영남균세사 등은 일반적 어사로 볼 수 없는 당상관 직책이다. 비변사 句管堂上 직위를 갖고 영남감진어사, 북도진휼사로 파견된 것이었다. 당시 박문수는 별견어사 활동 직후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 큰 공을 세워, 영남관찰사로 고속 승진한 상태였다. 영남균세사도 1750년 균역법이 시행됨에 따라 60세의 나이에 부족한 국가 재원 충당을 살피기 위해 파견된 고위직이었다.
결국 박문수가 암행어사 역할을 한 건 영남별견어사가 유일했다. 그는 공주 향리 생활로 백성들 어려움을 잘 알았다. 이 경험을 토대로 인사, 세정, 군정, 형정 등에 대한 여러 개선안을 냈다. 왕족들이 미개간지를 선점해 수조권을 행사하는 折收에 대한 개혁도 과감히 진언했다.
별견어사 업무지침[節目]은 “수시로 암행하여 민간의 어려움을 탐문하되, 불법 수령은 파직시켜 각 읍을 숙연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박문수는 철저한 염찰 업무를 수행했다. 수령 41명을 조사해 13명의 파직을 이끌었다.
박문수는 암행어사로 임명된 적은 없지만, 암행어사는 물론이고 다른 일반어사 역할까지 했다. 영조의 愛民의지를 널리 펴기 위해 별견어사직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이를 통해 박문수가 많은 암행어사 설화 속 주인공이 된 배경의 일단을 이해할 수 있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 박문수의 어사 이력 검토
3. 박문수의 別遣御史 활동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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