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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동선 (서울역사편찬원)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103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261 - 306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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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의 교수요목은 미국 콜로라도주 교수요목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긍정하고, 제한적이나마 개인의 삶과 권리를 인정하는 개인주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정부수립 초기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또한 공산주의나 소련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도 공민교과서에 반영되지 않았다. 한편, 이들 검정공민교과서를 집필한 저자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제국대학을 졸업하거나, 일본유학을 경험한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고려대학교나 서울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들은 주로 개인적인 친소 관계로 저자로 섭외되었다. 출판사 사장들 중에는 보성전문이나 중앙학교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집필자 중 고려대 교수와 졸업자가 많았던 것은 이런 까닭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국가주의적인 공민관을 지녔으며, 개인보다는 국가가 먼저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1948년 8월 安浩相이 문교부장관 취임하였다. 안호상은 독일 예나 대학과 교토제국대학에서 공부한 인물로 일민주의를 주창한 인물이다. 일민주의는 공산주의를 비롯한 모든 외래사상을 배격하고, 국가제일주의를 내세우는 이념이었다. 1949년 9월 정부는 중등교과서에서 국가이념에 배치되는 내용을 삭제하기로 하였다. 1949년 이전과 이후에 공민교과서 저자들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이들이 교체되지 않은 것은 이들의 공민관이 정부의 그것과 배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민교과서에 이전에 나타나지 않았던 반공주의적 내용이 1949년 9월 이후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민주의와 반공이 강조되면서 공민교과서의 내용은 국가주의가 강화되고, 공산주의와 북한, 소련을 비판하는 내용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6.25를 거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반공주의와 국가주의가가 결합된 소단락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소단락을 가진 공민교과서는 주로 제국대학을 졸업한 저자들에 의해 집필된 것이었다. 이후, 미군정이 남긴 교수요목의 영향력이 줄고, 당시 한국 지식인의 공민관이 더욱 강하게 반영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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