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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규태 (한성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106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03 - 140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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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미주지역에 거주하던 한인들이 조직한 적십자 조직과 이들이 벌인 인도‧정의의 적십자 활동에 관한 글이다. 첫째 3‧1운동 이전 대한인국민회의 구제원 편성과 구제활동, 그리고 대한인국민회 회원의 미국 적십자 가입 및 지원 활동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둘째 3‧1운동 이후 미주지역 한인의 구제회와 대한민국 대한적십자회의 지회 설립 활동을 고찰하였다. 셋째 1923년 대한적십자회의 국제적십자연맹 가입 실패와 국민대표회의에서의 합의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개혁안 도출 실패로 인해 대한적십자회 지회가 와해된 이후의 미주지역 한인의 적십자 활동을 살펴보았다. 미주지역의 한인조직인 대한국민회와 이를 계승하여 1910년 조직된 대한인국민회는 북미지방총회와 하와이지방총회, 또는 그 산하 지방회에 구제원을 편성하여 구제‧구호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미주지역의 한인들은 미국의 적십자에 가입하고 그 활동을 지원하였다. 3‧1운동의 발생 직후 하와이에 거주하며 대한부인회 활동을 하던 여성들은 독립운동을 후원하기 위하여 적십자사를 조직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와이주정부는 국가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들은 대한부인구제회를 조직하였다. 대한부인구제회는 나라 위하여 피 흘리고 죽고 다치고 고생하는 동족을 구제함을 주요 목표로 삼았으나 인류의 구제도 좌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한부인구제회는 일제의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나 자유와 독립을 얻으려는 것이 적십자정신의 구현이라고 보았기에, 이 회원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군과 광복군을 지원하고, 독립운동을 하다 희생당한 사람과 그 가족을 구제하고, 민족의식의 고취와 민족운동 역량의 증진에 힘을 쏟았다. 미국 본토의 몇몇 지역에서는 1919년 3‧1운동기 일제에 의해 벌어진 한인의 참상을 전해 듣고 한인구제회를 조직하였다. 한인구제회의 회원들은 일제의 참상을 알리고 조직을 확대하여 한인 구제활동을 벌였다. 또 다뉴바 등지에서는 대한여자애국단이 조직되어 독립전쟁 발발 시 간호원으로 활동할 준비를 하면서 구제활동을 벌였다. 대한민국이 탄생하고 임시정부가 수립된 직후인 1919년 7~9월 대한민국 대한적십자회가 조직되자, 미주지역의 한인들은 대한적십자회에 가입하고 인도‧정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대한적십자회에 가입하고 대한인국민회를 기반으로 삼아 대한적십자회 북미지부, 하와이지부, 멕시코지부, 큐바지부 등을 설치하고 의무금과 기부금을 출연하여 대한적십자회 본부의 활동을 후원하였다. 1920년 중반 대한민국 대한적십자회의 국제적십자연맹 가입이 좌절되고, 국민대표회의를 통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가자, 미주지역 한인들은 대한적십자회를 통한 활동을 전개하지 않았다. 대신에 이들은 대한인국민회를 통하여 독립운동 후원, 독립운동 참여자와 그 가족 구제, 이재 한인 및 인류의 구제와 같은 적십자 활동을 계속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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