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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진선 (전남대학교) 강은주 (전남대학교박물관)
저널정보
호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보 호남고고학보 제66권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10 - 133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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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제월리 유적은 1959년 5월에 청동기시대 석기들과 삼국시대 고분이 조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들은 2017년 『전남대학교박물관 60년사』 편찬과정에서 1959년 조사 당시에 작성된 간략보고가 첨부된 공문서들을 발견하였다. 이 자료들에 따르면, 담양 제월리 유적은 마을 주민들이 청동기시대 석기들을 수습하면서 알려졌으며,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삼국시대 고분 4기와 고려시대 무덤 2기를 추가로 조사하였다. 최몽룡이 1976년에 담양 제월리 고분으로 보고한 것은 그중 6호분에 해당한다. 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는 1959년 5월 30일에 관련 내용을 정리하여 문교부에 보고함과 더불어 발굴 허가를 얻고자 공문서를 발송하였다. 그러나 행정절차상의 문제 때문에 불법 발굴로 결론 내려졌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담양 제월리 유적은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다. 다행히 김원룡이 1964년에 담양 제월리 고분에서 출토된 동경 2점을 소개하였고, 최몽룡이 1973년과 1976년에 담양 제월리 유적 전반을 소개하면서 호남지역 고고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유적으로 인정되었다. 담양 제월리 유적은 조사과정에서 행정절차를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조사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양 제월리 유적 조사는 해방 이후 경주와 개성 등 고도를 조사하는 데 머물러 있었던 한국고고학을 다른 지역, 특히 호남지역으로 이끄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또한 영산강유역에서 백제 석실분의 존재도 알렸다. 담양 제월리 유적은 1950년대 한국 고고학 조사과정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학사적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당시에 마무리하지 못한 담양 제월리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지금이라도 다시 실시해서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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