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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나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영남학 제73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59 - 93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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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7~18세기 『소수서원노비안』 등의 고문서를 중심으로 노비의 혼인 및 가족 형태, 거주 지역 등을 밝히고자 하였다. 설립 초기에는 18명의 노비가 있었으나, 17세기에는 134명으로, 18세기에는 380여 명까지 증가하였다. 나이를 확인할 수 있는 노비 중에서 1677년에는 10세 이하가, 1762년과 1783년에는 71세 이상이 가장 많았다. 왜냐하면 1762년과 1783년에는 이전의 소수서원 노비가 모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외거노비는 신공으로 쌀을 냈고, 원촌에 거주하면서 신역을 담당한 노비와 원노와 양녀의 소생, 서원에 임시로 소속된 노비는 콩을 납부하였다. 따라서 소수서원 노비는 院村에 거주하면서 서원의 일을 하더라도 신공도 함께 담당하였다. 소수서원 노비의 혼인은 전체적으로 미상과 원비의 혼인이 가장 많았다. 다음은 1667년에는 원노와 원비의 혼인, 1762년과 1783년에는 원노와 미상, 원노와 양녀의 혼인이 많았다. 원노와 사비의 혼인은 엄격하게 규제하였다. 소수서원 노비의 세대유형별 가족에서 중복된 노비 가족을 제외하면 2세대가 가장 많고 다음은 7세대였다. 3, 4세대의 가족들은 대체로 7세대 이상에 포함되었다. 서원노비의 가계는 사노비보다 연속적으로 나타났는데, 서원노비들은 상속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수서원 노비들은 경상도 북부 지역에 주로 거주하였다. 18세기에 원촌에 노비가 집중적으로 거주하였지만, 거주 지역은 더 다양해졌다. 驛이나 齋舍, 다른 서원의 서원촌에도 거주하는 노비들이 있었다. 지금까지 17~18세기의 소수서원 노비의 노비 수, 나이와 신공, 혼인과 가족관계, 거주 지역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소수서원 노비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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