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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예주 (동아대학교 사학과 석사)
저널정보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인문사회과학연구 인문사회과학연구 제21권 제3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55 - 81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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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05년 일본에서 부산으로 건너와 정착한 일본인 기업인 사카타 분키치의 조선 인식과 그가 주도한 전기부영운동의 성격을 파악함으로써 재조일본인 내부의 계층적 구별을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부산의 대표적인 일본 기업인 사카타 분키치는 1876년 5월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산에서 곡물상 사카타상점을 운영하고 있던 아버지 사카타 요이치의 뒤를 잇기 위해 1905년 부산으로 도항하였다. 상점을 일임 받은 사카타 분키치는 이를 바탕으로 부산곡물시장, 경남미곡개량조합, 부산수산주식회사 등에서 요직을 맡아 상점 운영상의 이익과 자신이 정주하고 있는 지역의 이익을 추구하였다. 지역의 이익을 중시한 사카타 분키치의 사회·정치활동 중 그의 조선인식이 잘 드러나는 활동은 전기부영운동이다. 그는 지역 본위의 조선와사전기주식회사(이하 와전)를 지향하였다. 그러나 회사의 설립과정에서 일본 자본이 유입되면서 와전은 ‘사익(社益 )’중심의 경영을 하게 되었다. 이에 사카타 분키치는 전차만이라도 부(府)에서 운영하여 지역에 이익이 되었으면 하였다. 전기부영기성동맹회 회장으로서 부민운동을 주도하며 와전 매수 가격 협상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와전 매수 가격 협상이 난항 끝에 매수가격 642만 엔에 위로금 30만 엔을 지급하는 도지사 조정안으로 타결되었다. 사카타 분키치는 ‘6월 19일 조정안’을 수용하고자 하였으나, 부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매수 가격을 놓고 많은 대립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조정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사카타 분키치의 조선에서의 활동은 자신이 정주하고 있는 부산의 이익 및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부산의 이익을 위해서 전기부영운동 과정에서 조선인과 협력하기도 하지만 ‘6월 19일 조정안’ 수용 문제에 있어서는 부민과 대립한다. 즉 사카타 분키치는 지역의 이익을 중시한 식민지민이면서, 부산 내 일본인들의 이익만을 생각한 식민 권력의 대리자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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