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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역사문화연구 역사문화연구 제76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229 - 26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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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함보 관련 자료의 구비전승적 특징과 문헌기록을 비교하여 함보가 “고려에서 왔다” 또는 “신라인이다”라는 기록이 사실임을 밝혔다. 함보 관련 문헌기록은 구비전승되다가 문자로 정착하였기 때문에 내용이 단순화, 왜곡, 과장되어 문헌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가장 핵심적인 정보인 함보의 고려 내원설은 모두 기록하고 있다. 『고려사』와 『금사』에서는 함보가 “고려에서 왔다”고 한다. 함보의 고려 내원설에 관한 이야기가 서로 영향을 받지 않은 고려와 여진 사회에 독자적으로 전승되었으며, 여진 종실은 함보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으며, 금 황실이 마지막까지 고려 내원설을 견지하였다는 점은 함보의 고려 내원설을 뒷받침 한다. 『송막기문』과 『신록기』에서는 함보가 “신라인”이라고 한다. 함보의 ‘~보’는 신라 이름에 자주 사용하는 인칭접미사이고, 함보의 여진어 발음은 “비틀거리며 걷다”로 의미가 부정적이며, 여진어 작명습속에도 맞지 않아, 함보는 신라인임을 알 수 있다. 함보는 920~930년 경 여진땅으로 이동하기 전 현재의 황해도 평산군에 거주하였다. 당시 이 지역은 고려에 이미 정복된 신라땅이었기 때문에 함보는 고려인 또는 신라인으로 기록되었다. 따라서 함보는 신라계 고려인임을 알 수 있다. 금 통치자들이 기존의 북방왕조와 달리 시조의 고려 내원설을 끝까지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정통왕조론에서 종족주의를 배제하였기 때문이다. 금은 이적도 정통이 될 수 있다는 관념의 변화를 통해 당당히 정통왕조가 되었다. 이와 같은 금의 노력으로 이후 이민족 정권인 원과 청은 진정한 중국의 정통왕조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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