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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윤선 (대진대학교)
저널정보
백제학회 백제학보 백제학보 제29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31 - 59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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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성씨는 첫째, 부계(父系) 혈통율과 부거(夫居)의 거주율이 원리였던 사회적 관습의 집약적 표현으로 부계친족집단 구성원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이름이다. 둘째, 부계 표지이자 신분 표지로 형성되었다. 부계나 모계의 단계(單系) 출계집단의 형성을 위해서는 동성불혼의 외혼의 관습(exogamy)이, 부계중심의 친족집단 형성을 위해서는 부거제적 혼인 방식이 지배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백제에서는 동성혼의 가능성이 포착되고, 부거제는 확인되지 않는 한편 처거제적인 혼인사례가 추론되며, 따라서 모계를 배제한 부계 중심의 친족집단이 형성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즉 백제사회는 성씨문화가 구현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백제에서 성씨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확실한 왕족집단의 경우에도 인명표기에서 성씨를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백제 인명에서 성씨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고 전제할 수 없다. 또한 부자 사이에도 다른 성씨를 사용하는 등 부계 출계 표지나 동일 친족집단의 구성원임을 드러내고 결속하는 것과 같은 성씨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 백제왕들은 중국과의 교류에서 성씨를 사용하여 중국과 문화적 동질감을 표현함으로써 외교적인 편의를 도모했다고 생각된다. 성씨 사용 목적이 본래의 역할과 다른 것이다. 성씨의 가능성이 있는 이름으로서 살펴본 동명이인들에는 왕명이 상당히 많다. 고이, 동성, 기루, 삼근 등 백제왕의 이름들을 후대 왕족들이 사용하였는데, 그 가운데 고이는 성씨 단계에 진입하였고, 동성은 아직 성씨화에 이르지 못한 단계였다고 생각한다. 모계 친족집단명 혹은 백제 고유 단어의 가능성이 있는 기루, 단순히 후대왕들이 재사용한 선조왕의 이름인 초고·구수·개로 등의 이름들은 각각 그 성격과 내용이 다르다. 그러나 선조왕의 이름을 사용하여 왕손이라는 사실을 과시한다는 점에서 신분표지적인 역할을 공통적으로 행한다. 그 밖에 부여계 존칭 해는 백제에서 성씨화되었고, 백제 고유의 막고·갑배 등은 성씨가 아니지만 신분과 지위를 보여주는 호칭이었다. 백제 인명에서는 이와 같은 사회적인 지위와 신분을 드러내는 호칭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재사용된다는 점에서 성씨와 비슷해 보였고, 역할은 성씨와 다르지 않았다. 백제사회는 성씨를 수용하여 사회적으로 적용해가고 있었는데, 성씨 본연의 의미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불완전하게 사용되었다. 그것은 한편 성씨가 표현하는 친족집단과 백제의 실제 친족집단과의 괴리에서 기인한 바였고, 다른 한편 백제에서 성씨의 활용 양상과 성씨의 본연의 역할과의 차이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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