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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구난희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63輯
발행연도
2019.3
수록면
63 - 96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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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발일 교류에 등장하는 소그드인에 주목하여 그들이 이 장면에 등장하기까지의 과정과 의미를 다루고 있다. 발해와 서역 교류가 단편적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는 현실을 보완할 수 있는 하나의 시도로 세계사적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던 소그드인의 행보 속에서 발해와의 조우 가능성을 찾아내고 발해 내 소그드인의 역할과 의미를 검토하였다.
전반부에서는 昭武 9姓과 薩寶職의 변화를 통해 소그드인의 중국 진출을 추적하고, 영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石國 출신으로 추정되는 石世則이 突地稽 세력에 부속된 사실, 『唐六典』에 등장하는 농우관내 군병 중 6주 고려인의 존재, 돈황문서 P3432와 P2613에 등장하는 高離(梨)錦 등의 사례를 통해 營州 지역과 甘肅 지역에서 발해 전야부터 소그드인과 조우하였을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후반부에서는 759년 파견된 安貴寶 성명 앞에 기록된 ‘解臂鷹’이 매를 부리는 일과 관련되었다는 점, 776년 史都蒙이 관상가로 주목받았다는 점 등을 통하여 등장인물이 소그드인일 가능성을 보완하였다. 다만 이러한 사례가 3회에 그치고 소그드인의 참가에도 불구하고 서역산물이 교역품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소그드인의 일본 교류 참여는 상례적 현상이 아니라고 보고 이들이 등장하는 과정의 의미를 검토하였다.
759년에는 안사의 난이 일어나고 藤原河淸의 무사 귀국이 무산된 시점이라는 점, 776년과 841년은 발해가 대일 외교의 교착상태를 극복하고자 했던 상황이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즉 발해가 소그드인을 대일 사절에 포함할때는 각별한 현안이 있었으며 이는 곧 발해가 소그드인을 양국 교류에 선택적으로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발해는 소그드계 인물을 사절단의 일원으로 포함시킴으로써 일본과 서역간의 직접 교류를 차단하여 중계 실익을 지키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소그드의 존재와 그들을 가동할 수 있는 자신의 위력을 인지하도록 하는 정도의 정보를 관리 조정하였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소그드인의 동방 진출
Ⅲ. 발해와 소그드인의 조우
Ⅳ. 일본과의 교류와 소그드인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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