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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한국복식 한국복식 제42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73 - 97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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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6년(성종 7)에 그린 <손소 적개공신화상>은 조선초기 공신화상의 주요 특징을 전해주는 자료이다. 반측면의 얼굴 방향을 취한 형식은 <손소 공신화상>에서부터 시작되었고, 형태감과 세부 묘사에는 15세기 초상화로서의 높은 완성도가 잘 나타나 있다. 1476년 세조어진(世祖御眞)을 모사할 때참여한 최경(崔涇), 안귀생(安貴生), 배련(裵連) 등의 화원이 적개공신화상 제작에 참여하였을 가능성을 짚어보았다. 손소가 1467년 적개공신에 녹훈된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 공신화상이 제작된 것은 연이은 국장(國葬)과 정희왕후(貞熹王后)의 섭정기(攝政期) 등 매우 혼란한 시기를 거쳤기 때문으로 보았다. 1476년 성종이 친정(親政)을 강화하면서 공신의 예우에 관심을 가진 것이 10년 전 중단된 적개공신화상의 제작 배경이 되었던 것으로 추측하였다. 공신상은 입각도형(立閣圖形)이라 하여 충훈부(忠勳府)에 한 본을 보관하는 것이 공신교서(功臣校書)에 기록되었으나 태종이 이를 시행하지 않은 정황을 살펴보았다. 따라서 <손소 공신화상>은 당시한 본만이 제작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손소 공신화상>은 1795년 이명기(李命基, 1756∼1802 이후)에 의해 이모본(移模本) 한 본이 그려졌다. 손소의 후손인 손국제(孫國濟, 1719∼1795)가 당시 장수찰방(長水察訪)인 이명기에게 부탁하여 그린 것이다. 이명기와 주고받은 세 통의 간찰이 전하고 있다. <손소 공신화상>은 15세기 공신복식의 전형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첩리(帖裏)와 답호(褡穫)의 묘사, 직금흉배(織金胸背)와 품계의 관계, 오사모(烏紗帽)와 각의 표현, 협금화(挾金靴)의 착용, 그리고 1936년에 촬영한 사진 속에 나타난 1735년의 이모본 세조어진의 대략적인형상을 통해 특징을 살펴보았다. <손소 공신화상>은 복식의 시대성을 담고 있는 자료이며, 조선초기공신화상이 지닌 다양한 시사점을 살필 수 있는 사례로서 공신화상의 연구 범위를 확충해주는 자료라는 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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