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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역사문화연구 역사문화연구 제58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3 - 34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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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인들이 남겨준 문화유산 중 가장 의미 있는 유산의 하나가 광개토왕릉비이다. 광개토왕릉비는 주지하듯이 1775字로써 건국 과정과 광개토왕의 훈적, 그리고 수묘인에 관해 낱낱이 기재하였다. 그러한 광개토왕릉비는 광개토왕릉과 연계된 비석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본고 작성의 직접적인 계기는 태왕릉을 에워싸고 있는 陵墻의 존재를 확인하면서였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태왕릉 주변 '土壘'의 존재가 도면에 적시되어 있었지만 看過하였었다. 물론 광개토왕릉비와 태왕릉은 비록 350m밖에 안 떨어져 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태왕릉 담장 바깥에 능비가 소재했다는 사실이 지적되었다. 그런데 필자는 담장을 가리키는 '土壘'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기록한 논문을 입수하였다. 그럼에 따라 태왕릉의 '土壘' 즉 陵墻 바깥에 능비가 세워진 사실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은 태왕릉과 능비가 서로 관련이 없음을 웅변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간 지루하게 전개된 광개토왕릉 논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력한 근거로 삼을 수 있었다. 장군총은 광개토왕릉임을 확정 짓고자 하였다. 반면 광개토왕릉으로 한때 유력하게 지목되기도 했던 태왕릉은 '國罡上王'이었던 고국원왕의 陵으로 비정하는 게 합당하였다. 당초 왕족묘로 분류되었던 우산하 0540호분은 태왕릉 뒤편에 소재하였던 한변 20~25m되는 5基의 석총 가운데 한 곳이 분명하였다. 조밀하게 붙어 있었던 이들 고분군은 단독 墓域을 확보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다가 태왕릉에서 북쪽으로 불과 100여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우산하 0540호분은 태왕릉 북쪽 陵墻에 가장 근접하였다. 이러한 점에만 비추어 보더라도 우산하 0540호분은 왕릉으로 비정할 수 없다. 따라서 우산하 0540호분에 대한 왕릉 비정 논의는 의미를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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