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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곽뢰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동국사학 동국사학 제59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321 - 358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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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신앙, 오대산문수신앙은 각각 대승불교의 보살사상, 『화엄경』에 의거한 신앙이라는 별개의 연원에서 출발하는 신앙들이다. 이에 두 신앙의 성립시기와 사상적 배경이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신앙이 중국불교사의 변천과 더불어 오대산지역 불교의 발전에 따라서 결합되면서 나중에는 동일하게 되었다. 동진 시기 번역된 60권본 『華嚴經』 「菩薩住處品」에는 문수보살이 청량산에서 常住說法한다고 기재되어 있다. 바로 이 문구의 청량산을 중국 오대산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에 오대산문수신앙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역대의 문헌 기록들과 학계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화엄경』의 「보살주처품」을 그 근거로 하여 일찍이 북조시기부터 오대산이 문수보살의 주처이었다는 인식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 문헌들을 자세히 고찰해 보면 오대산의 발전과 문수신앙의 관계는 선인들이 논했던 것처럼 그렇게 긴밀하지는 않았다. 이 시기 오대산불교의 발전은 결코 문수신앙이 주가 아니었다. 그리고 수나라 이전에 ‘청량산=오대산’이라는 인식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한편, 신라 중고기 불교계를 대표하는 승려 慈藏은 신라 오대산문수신앙의 전래자로 지칭된다. 그런데 현재 전하고 있는 자료들 상호간에 서로 모순되는 내용이 있어 학계에서는 자장이 문수신앙의 전래자라는 점에 대하여 확정할 만한 구체적인 근거가 빈약하여 이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 못한 상황이다. 중국 오대산문수신앙의 설립 과정을 참고해 보면 자장이 입당하였지만 代州 오대산을 참배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의 문수신앙은 자장의 입당 이전, 구법승을 통해 불교경전을 신라로 유입되면서 본격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신라 오대산문수신앙의 성립 시기는 8세기 중엽을 넘어서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신라중대에 전래된 오대산문수신앙은 당나라의 오대산문수신앙의 발전에 따라 수용하게 되었다. 이처럼 신라의 오대산문수신앙은 일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두고 진행된 것으로, 선덕여왕에서 경덕왕 대에 걸쳐 점차 성립된 것으로, 결국 불국토사상을 바탕으로 통일신라의 북방정책에 발맞추어 명주 오대산 일대의 안정화를 그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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