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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李璟珣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60號
발행연도
2023.12
수록면
221 - 248 (28page)
DOI
10.29334/MHSH.2023.12.6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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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상원사는 한국 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사찰로서 그 동안 많은 관련 연구 성과가 축적되어 왔다. 하지만 조선 후기의 상원사에 대한 구체적 연구는 많지 않았다. 이 글은 조선 후기 오대산 상원사의 모습과 위상을 살펴보기 위해 오대산 유산기록을 검토하였다. 조선 후기 오대산 유람이 증가했는데 그 배경으로는 금강산 유람의 유행과 유람 권역의 확대, 오대산사고의 설립과 운영, 김창흡과 같은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의 유람 등을 들 수 있다. 유산기에는 오대산의 많은 사찰과 승려들이 기록되어 조선 후기에도 오대산 불교가 건재하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17세기 중후반 환적 의천에 의해 몇몇 중대 암자들이 중창되었는데 유산기는 이에 대한 생생한 목격담을 전했다.
조선 후기 유산기에는 상원사 가람의 법식과 정교한 건축에 대한 유람자들의 감탄이 기록되었다. 유람자들은 세조에 의해 중창된 상원사의 사적을 회고하면서도 17세기 이후 상원사의 절이 비고 승려가 몇 명 남지 않은 상황을 전하기도 하였다. 또한 18세기 이후 상원사 전각 수가 줄고 가람배치도 변화를 겪었음이 드러난다.
한편, 유람자들은 상원사 왼쪽에 중창된 진여원과 함께 조성된 문수상, 36변상도를 목격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또한 나옹의 전설을 지닌 계수나무, 나옹의 얼굴을 닮은 나한존상 등을 언급하며 상원사에 나옹의 전승이 이어지고 있음을 증언하였다. 조선 후기 오대산 사찰들의 위상과 역할의 변화 속에서 상원사는 오대산 신앙의 상징적 장소로서 위상과 전승을 보존하려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조선 후기 오대산 유람과 불교
Ⅲ. 유산기에 나타난 상원사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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