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용재 (전북대)
저널정보
한국프랑스사학회 프랑스사 연구 프랑스사 연구 제46호
발행연도
2022.2
수록면
257 - 287 (31page)
DOI
10.51786/RCHF.2022.02.46.257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프랑스 역사에서 ‘1515년’은 자연스럽게 ‘프랑수아 1세’와 ‘마리나노’를 연상시킨다. 1515년 9월, 프랑수아는 마리냐노 전투에서 막강 스위스군을 꺾고 밀라노를 탈환했으며 이탈리아 원정을 승리로 장식했다. 마리냐노의 승리는 젊은 왕의 화려한 치세를 알리는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프랑수아는 1525년 파비아 전투에서 신성로마제국군에 엄청난 참패를 당하고 포로 신세가 되었다. 국왕의 명예는 실추되고 왕국은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파비아의 ‘참사’는 오히려 불굴의 기사로서의 군주의 영예를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다. 연대가작가와 인문주의자들은 왕국의 동요를 막고 국왕의 위엄을 되살리려 나섰다. 여기서 10년 전 마리냐노 전투의 승리가 새삼 부각되었다. 기사 바야르와 국왕 프랑수아의 무훈과 용맹이 널리 선전되고, 마침내 국왕 프랑수아가 바야르에게 기사서임받는 멋진 장면이 ‘발명’되었다. 요컨대 파비아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에, 명예를 존중하는 ‘기사-국왕’ 프랑수아가 탄생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기사-국왕’과 ‘겁도 없고 흠도 없는 기사’의 ‘전설’은 기사서임 장면의 진위 여부와는 관계없이 여전히 프랑스인들의 집단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듯하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1515’ 그리고 ‘마리냥’
Ⅱ. 프랑수아 1세와 마리냐노 전투
Ⅲ. 전투의 재발견, 상상의 전투
Ⅳ. 맺음말
참고문헌
Résumé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22-926-001090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