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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동훈 (서울교육대학교)
저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논총 동북아역사논총 제75호
발행연도
2022.3
수록면
133 - 174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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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연구자들은 명에 대한 조선의 조공과 관련하여, 홍무 연간에는 3년 1공이 행해지다가 건문 연간 이후 1년 3사로 전환되었다고 이해해왔다. 그리고 다른 외국에 비해 훨씬 빈번하게, 1년에 세 차례씩 사신을 파견한 사실은 조선과 명이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많이 제시되었다. 이 글은 고려-명 관계에서는 처음부터 줄곧 1년 3사가 원칙이었으며, 홍무제의 명령에 따라 아주 일시적인 예외가 있었을 뿐임을 증명하였다.
고려는 명과 관계를 맺은 이후 곧바로 1년에 세 차례, 하정사, 하성절사, 하천추절사를 파견하였다. 과거 한 세기 동안 고려가 몽골에 대해 하던 관행, 그에 앞서 고려가 거란·금에 대해 하던 관행을 그대로 명에도 적용한 것이었다. 1372년, 황제는 고려에 처음으로 3년에 한 번씩만 사신을 보내라는 명을 내렸다. 고려에서 너무 자주, 너무 큰 규모의 사신단을 파견하여 명 국내 사정을 염탐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었다. 이 조치는 1383년까지 대략 10년 정도 유지되었다.
1384년에 공식적으로 복원된 1년 3행은 이후 1392년까지 큰 문제없이 지속되었다. 황제는 1393년에도 3년 1행을 지시하기는 하였지만, 이는 신흥 왕조 조선을 길들이기 위한 외교적 압박이었을 뿐이었다. 실제 이 조치는 1년이 채 되지 않아 슬그머니 철회되었다. 1397년에도 마지막으로 3년 1행 조치가 행해졌지만, 이는 황제의 죽음과 함께 자연히 무효가 되었다. 요컨대 황제는 고려 측에 불만이 있을 때마다 사신 파견 횟수를 줄이라고 명령하였던 것이다. 이후 1400년부터 양국 관계가 단절되는 17세기 초까지 1년 3행은 안정적으로 지속되었다.

목차

Ⅰ. 문제의 소재
Ⅱ. 문헌 검토
Ⅲ. 홍무 연간 고려·조선-명 관계에서의 공기(貢期) 문제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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