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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이순 (홍익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314號
발행연도
2022.6
수록면
67 - 9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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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은 ‘繼志述事’의 차원에서 의례서 규범과 선대 왕릉을 참조하여 조성했기 때문에 일관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석물 제도에서는 지속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변곡점에 왕보다 왕비가 먼저 세상을 떠난 내상재선 왕후릉 11기의 능(貞陵, 英陵, 順陵, 禧陵, 穆陵, 長陵, 翼陵, 明陵, 弘陵, 景陵, 洪陵)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조선왕실에서 전통와 규범을 중시하면서도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權道로 변통했기 때문에 발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왕의 대상과 왕후의 내상의 의례에는 ‘孝’가 바탕에 자리하고 있다. 그에 비해 내상재선의 의례에는 왕의 배우자에 대한 ‘義’가 우선한다. 물론 세자가 있을 경우에 세자가 主喪이 되고, 세자가 없더라도 왕위를 계승한 왕이 장례 주관자가 되니 기본적으로 효의 개념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한편, 내상재선의 경우는 배우자인 왕이 주체자가 되어 의례가 진행되므로 효보다는 부부간의 의리가 중요했다. 왕의 국정 경륜이 쌓인 상태에서 발생한 내상재선의 경우에 왕은 능 치장 과정에서 시대적 상황에 맞도록 석물제도의 현실화를 꾀했다. 특히 배우자의 능이 곧 壽陵인 경우에는 왕이 ‘權道’로 능의 조성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제도변화를 단행했다. 새롭게 도입된 제도는 이후 왕릉 조성에서 규범, 즉 常經으로 자리 잡았다. 이와 같이 보수성이 강한 왕릉 조성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常經과 權道라는 정치 철학적 개념의 기제가 있었기 때문이며, 조선왕릉 석물은 조선시대에 권도 개념이 이론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구현된 실증적인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內喪在先 왕후릉
Ⅲ. 내상재선 왕후릉과 權道
Ⅳ. 맺음말
참고문헌
References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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