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허인욱 (한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45호
발행연도
2022.3
수록면
119 - 150 (32page)
DOI
10.31218/TRKH.2022.3.145.119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梧木臺는 李成桂의 御眞이 안치되어 있는 慶基殿으로부터 대략 400m 정도 떨어져 있는 나지막하게 솟은 언덕바지이다. 이곳은 고려 말에 이성계가 남원 雲峯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개선할 때에 그 위에서 宗族을 모아 축하연을 베풀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성계는 1356년(공민왕 5) 이후 고려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갔으나, 동북면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큰 장애로 다가왔다. 고려인일 수도 또는 야인일 수도 있는 그의 혼종적 정체성으로 중앙 정계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이성계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혼인 등을 통한 인맥을 형성하거나, 자신의 집안이 고려의 사대부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부단히 강조했다.
그럼에도 동북면 출신이라는 점은 극복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성계가 중앙 정계에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고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 줄 근거가 필요했다. 그것은 선조가 살았던 전주를 그의 본향 또는 고향으로 덮어씌우는 방안이었다. 1380년의 운봉 전투 이후에 전주 방문 과정에서 자신과 갈래가 다른 전주이씨들과의 만남이 있었는데, 이성계는 이를 활용해 동북면 출신임을 희석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성계는 중앙 정계에서 정치적 위상이 높은 이색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 이자춘의 신도비명을 작성하였다. 신도비명에는 전주이씨가 전주의 대성이라는 사실과 이자춘과 서형 이원계 그리고 자신이 완산부원군 또는 완산군의 봉군호를 받았음을 명시하였다. 이는 자신의 집안이 오랜 기간 전주에 뿌리를 둔 집안이자, 권문세가에 손색없는 집안임을 강조한 것으로, 이성계가 자신의 정치 행보에서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흠을 미리 지워내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이후 이성계는 전주인으로 인식되었으며, 그 인식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우왕 6년 오목대 연회와 ‘大風歌’
Ⅱ. 이성계와 전주 그리고 ‘고향’ 덮어씌우기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