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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욱재 (독립기념관)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88호
발행연도
2022.8
수록면
331 - 354 (24page)
DOI
10.21490/jskh.2022.8.88.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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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시는 성리학의 절정기인 19세기 중반 강원도에서 태어나 대한제국 시기에 관료로 활동하였다. 그는 대한제국의 관료로 활동하면서 『국조보감』 편찬 등에 참여하는 등 행정 능력뿐만 아니라 학식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정봉시는 일제의 대한제국 강점 이후 사망할 때까지 일제에 협력하여 경학원에서 활동하던 대표적인 일제협력유림 중의 한명이 되었다. 그는 정만조와 함께 경학원 강사로 시작하여 부제학・대제학 및 명륜학원 총재에 오른 유이한 인물이었다. 정봉시는 1912년부터 1929년까지 경학원 강원강사로 활동하며 일제의 천황과 황태자를 칭송하는 시문을 짓는 한편, 일제의 식민통치를 유교의 가르침으로 정당화하는 강연을 하였다. 그의 유교담론은 조선 성리학의 ‘의리사상’이 제거되고 일제가 지배하고 있는 식민지 조선의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유리한 내용으로 점철되었다. 전왕조시대의 성리학보다 수준이 떨어진 일제협력유림의 유교담론은 오히려 유교와 유림을 낡고 케케묵은 생각과 썩은 유생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1930년대에 들어서면 유교와 유림은 우리 역사의 주류에서 완전히 탈락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일제 강점 이전 정봉시의 행적
3. 강점 이후 정봉시의 활동과 유교담론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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