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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은영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양명학회 양명학 陽明學 제67호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57 - 90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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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의 마지막 세대 대표 양명학자인 寧齋李建昌(1852~1898)의 생애를 고향인 강화에서 지은 작품과 강화에 대해 읊은 작품을 통해 살펴본 것이다. 영재는 조선 500년 최연소 문과 급제자로 관직에 나아가 두 차례 암행어사와 한 차례 按覈使를 지낸 관료 출신으로 세 차례 유배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또 麗韓十家중 한 사람이자 한말 4대 문장가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한마디로 정의되지 않는 영재는 태어나면서부터 家學으로 양명학을 익혔다.
그는 관직에 나아가 정치를 할 때는 물론, 스스로 조선 500년 최고의 문장가가 되기로 기약하며 지은 문학작품에서 양명학적 사고를 드러냈다. 특히 최고의 문장가를 기약한 그는 문학론으로 양명학적 사상을 토대로 하는 性靈論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詩는 자신의 정감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함을 강조한 ‘緣情’의 시론을 토대로 현실주의적 경향의 시편을 다수 남겼다. 문장은 주체적인 면을 강조한 ‘惟吾心愜’의 문장론을 토대로 다수의 명편을 남겼다. 이렇게 양명학적 사고를 기저로 지은 작품들을 그는 『명미당집』에 남겼다.
그가 강화지역에서 지은 작품과 강화지역에 대해 지은 작품들을 살펴본 결과 ‘物’보다 ‘我’를 중시한 작품, 빈부타파를 위한 토지개혁 및 붕당타파를 주장한 작품, 利國便民을 중시하는 작품 등 양명학적 사유에서 빚어진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본 논문은 영재는 전형적인 양명학자였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목차

요약문
Ⅰ. 머리말
Ⅱ. 생애와 강화 거주 시기
Ⅲ. 강화에서 지은 작품과 강화에 대한 작품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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