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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노용필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 민족문화연구 제97호
발행연도
2022.11
수록면
93 - 126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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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문과 김지성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달성하기 전후한 시대에 42년이나 함께 생존했지만, 둘 사이에는 사회적 처지에 상당한 격차가 있었다.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은 唐에 의해 新羅王에 봉했다가 철회한 적이 있었고, 훗날 사망하였을 때 신라의 최고위 관등을 부여받았던 眞骨이었다. 이에 반해, 金志誠은 唐에서 皇室의 齋戒를 지낼 때 동참하는 직책을 지냈고, 귀국 후에는 執事部의 侍郞職을 지내다가 은퇴한 六頭品이었다. 그럼에 불구하고 이들은 사상적인 면에서는, 당시 唐의 지식인들이 그러했듯 儒佛道를 섭렵하는 普遍性을 띠기도 하였다. 첫째, 유교에 있어서 어려서부터 학문을 배워 儒家의 서적을 많이 읽었다는 점, 둘째 도교 경전에 있어서 『老子道德經』을 수용하여 애독하면서 중시하였다는 점 등에서 그러하다. 그렇지만 그 이외에는 서로 個別性을 띠었다. 특히 도교사상에서 두 사람은 『莊子』를 애독하면서도 김인문은 그 「天下」편을, 김지성은 그 「逍遙遊」편을 중시하였음이 확인되는 것이다. 김인문과 김지성이 지닌 이러한 도교사상의 특징은 그 자신의 사회적 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가늠된다. 김인문은 唐 皇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식인들과의 교유하던 신라의 왕족으로서 적어도 중국의 사상 맥락을 제대로 알고자 했기에 그런 내용이 담긴 『장자』의 「천하」편을 중시하였던 것이라 이해된다. 반면에 김지성은 현실 정치 속에서 “지략도 없이 세상을 바로잡으려다 겨우 刑과 法에 걸리는 것을 면한” 체험이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종국에는 6두품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관직을 역임하고 퇴임하기에 이르게 되자, ‘悠悠自適’의 이상을 추구하는 『장자』의 「소요유」편을 중시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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