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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선아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동양한문학회 동양한문학연구 동양한문학연구 제63권
발행연도
2022.10
수록면
127 - 154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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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흥덕 출신의 노론 황윤석과 광주군 출신의 근기 남인 안정복은 博學多識한 학자로 영조가 추진한 탕평정책으로 관직에 나갈 기회를 얻었다. 그들은 일생 동안 만난 적은 없었지만 출사한 이후 官路에서 몇 차례 교차하였다. 특히 황윤석은 장릉 참봉에 임명되어 영월 부사 정술조를 만나 안정복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정술조는 자신과 안정복이 竹馬交友였다고 하면서 ‘安書’- 東史綱目 을 소개하였던 것이다. 황윤석은 장릉 참봉을 거쳐 중앙 관서에서 근무하면서 안정복 등 남인의 학문을 접하였다. 황윤석은 종부시 직장으로 근무하면서 文獻備考 편찬에 참여하였는데, 남인 신경준이 맡고 있는 「輿地考」에 관심이 많았다. 신경준은 안정복 등 남인의 견해를 수용하여 「여지고」를 편찬하였고, 황윤석은 문헌비고 를 편찬하는 과정에 남인의 학문을 직,간접적으로 접하였다. 이후 황윤석과 안정복은 비슷한 관로를 거쳤는데, 황윤석은 정조 3년(1779)에 안정복의 후임으로 목천 현감에 임명되었다. 목천현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황윤석은 목천현에 대한 정보와 자료를 모았고, 안정복이 편찬한 大麓誌 를 열람하였다. 대록지 를 검토한 황윤석은 발문을 짓는 등 그 내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두었다. 목천현감으로 부임한 안정복은 평소 ‘下學’의 학문을 실천할 기회로 생각하고 향촌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洞契를 회복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읍지의 편찬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안정복의 노력에 비해 ‘악습’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안정복의 후임으로 부임한 황윤석은 ‘백성을 지나치게 사랑한’ 안정복의 행정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그는 전임 현감 안정복의 ‘흔적’과 경쟁하며 지방관으로 치적을 남기려다가 오히려 파직되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 안정복과 황윤석은 근기 남인과 호남 노론이라는 지역과 당색으로 인한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 경계에 갇히지 않고 박학과 전문을 추구하며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삶을 살았다. 특히 황윤석은 호남 노론이라는 정체성에 매몰되지 않고 안정복 등 남인의 학문을 수용하며 자신의 시대를 인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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