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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지형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신학전망 신학전망 제220호
발행연도
2023.3
수록면
31 - 59 (29page)
DOI
10.22504/TP.2023.03.2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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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8세기 후반 안정복의 서학에 대한 인식과 대응 양상을 그가 남긴 서간 19통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특별히 서간에 주목한 이유는 편지의 작성 시기 및 수신자를 고려하여 안정복의 생애 주기별로 서학에 대한 인식과 대응 양상을 더 세밀하게 파악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서학 비판 저술 이후 안정복의 말년 활동이나 행보를 규명하여, 한국 천주교회 설립 초기의 여러 문제들을 보완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안정복은 성호 이익의 문하에 들어가면서 서학서를 접하였으며, 40대 중년기에 천주실의 등을 읽고 천당지옥설, 영혼론에 대한 논의를 근거로 이단성을 지적하였다. 특히 마테오 리치가 사용한 리(理)와 태극(太極) 개념의 모순성을 유교 성리학의 관점에서 비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 순암의 서학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학문적인 연구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한편, 1784년 이후 성호 문하의 젊은 사류들이 본격적인 신앙 활동을 벌이자, 안정복의 서학 비판은 유교 성리학을 수호하려는 ‘벽이단’(闢異端)의 층차로 변화하였다. 이 시기는 순암이 70세를 넘긴 인생의 만년기에 해당하는데,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천주학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성호 문하의 젊은 사류들에게 편지를 보내 천주학을 끊을 것을 권고하였다. 이와 더불어 『천학고』·『천학문답』 등의 서학 비판 저술을 남기기도 하였으며, 주변 인사들과 서학 비판 연대를 도모하는 한편, 반서학 인식을 확산시키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안정복이 노병(老病)과 싸우며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도 반서학 인식의 확산과 공유에 매진하였다는 점은 매우 특기할 만한 지점이다. 이처럼 안정복이 보여준 일련의 서학에 대한 대응 양상은 그가 왜성호우파 즉 공서파의 핵심 인물인지를 말해 준다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 초록
Ⅰ. 들어가는 말
Ⅱ. 서학에 대한 비판적 인식의 기초
Ⅲ. 한국 천주교회의 창립과 서학의 위험성 경고
Ⅳ. 성호 문하 소장파들과의 갈등과 새로운 행보
Ⅴ. 서학 비판 연대의 모색과 반서학 인식의 확산
Ⅵ. 나가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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