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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기문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불교연구원 불교연구 불교연구 제57호
발행연도
2022.8
수록면
145 - 18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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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에서 고려말까지 혜목산 高達寺의 소속종단 변화와 그 배경을 고승비문과 고달사지 발굴결과를 통해 고찰하였다. 860년대 경문왕이 玄昱의 하산소로 지정한 때를 기점으로 혜목산문[고달사 종풍]은 고달사를 본거로 890년대까지 계승자 심희(審希, 855~923)에 의해 유지되었다. 그 후 경명왕대 심희가 국사례를 받고 하산한 김해 봉림사로[봉림산문] 본거를 옮겼다. 고려에서 고달사 재건은 심희의 계승자이자 이 절에서 출가한 璨幽에 의해 이루어졌다. 찬유의 교선일치 사상경향이 광종의 국왕권 강화와 연결되자 고달사는 찬유의 하산소로 되고 봉림산문[혜목산문]의 본거도 되었다. 고달사지는 법당, 승탑, 비, 影堂 등으로 이루어진 上院을 통하여 선종사원 구조의 특성을 보였다. 고려중기 義天이 숙종의 국왕권을 강화하는 배경으로 천태종을 창립할 때 고달사는 천태 五門[5개 소 사원]의 일원으로 합류하였다. 고달사를 재건한 찬유의 천태사상경향이 문도에게 계승되었기 때문이다. 고달사는 국내 산파 계열로 보아 봉림산문[혜목산문]으로서 천태종에 합류하였다. 의천 사후 九山門계열에서 直投한 翼宗계열이 주도한 남숭산문[선봉사]이 으뜸이 된 ‘天台六法眷’ 형성시에도 고달사는 그 일원이었다. 건물 유적과 고급청자 유물로 볼 때 寺勢가 절정이었다. 원간섭기 충렬왕이 기존 불교계를 재편하기 위해 천태종을 지원하였다. 충숙왕대 국통이 된 丁午가 승정권을 가지고 國淸寺를 ‘六山根本’으로 재건하고 ‘天台六山’을 다시 결집하였다. 그 일원으로서 고달사는 14세기 후반에도 천태종 소속과 종풍을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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